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 관람객이 개봉 12일 만에 1000만명을 넘은 가운데, 재계의 '이순신 리더십' 열기가 뜨겁다. 단체 관람하거나 이순신 관련 서적을 구입해 정독(精讀)하는가 하면, 임원 회의와 최고경영자(CEO) 편지 등에서 '이순신 정신'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경기 침체 장기화와 일본·중국 기업의 약진으로 위기에 몰린 한국 산업계에 410여년 전 '이순신 리더십'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40代 2~3세 오너들 이순신에 매료(魅了)

이순신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47세인 1592년 한산도 해전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래서 그런지 40대 기업인 가운데 '이순신 팬'이 많다. '이순신 마니아'를 자처하는 정의선(44)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을 꼽는 그는 휴가 기간이면 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탐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한국 재계의 리더들이 최근 위기 돌파를 목적으로 강한 카리스마와 진정성, 전략적 사고를 갖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큰 관심을 갖고 경쟁적으로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조현준(46) 효성 사장도 '이순신 팬'이다. 그는 최근 임원들에게 영화 '명량' 입장권과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라는 책을 직접 사서 나눠 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IMF 위기 당시 전(全) 계열사 사무실에 이순신 장군이 말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글귀를 액자에 걸어놓고 "지금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우리의 각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46세였다.

위기 극복 靈感과 용기 주목

김석 삼성증권 사장은 지난달 31일 전국 지점장들과 '명량'을 단체 관람하며 "절체절명 위기를 승리의 기회로 반전(反轉)시킨 충무공의 리더십을 배워 위기 극복의 선봉장이 되자"고 말했다. 효성그룹은 이달 12일 사내 방송으로 '효성, 이순신을 만나다'를 방영하고, 이달 '전(全) 사원 책 읽기 캠페인'에서 이순신 관련 서적을 선정키로 했다.

(사진 왼쪽부터)김승연 한화 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김석 삼성증권 사장.

무선통신 시장에서 SKTKT를 추격 중인 LG유플러스의 이상철 부회장은 11일 임원들과 '명량' 단체 관람에 앞서 "열세 상황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대를 뛰어넘는 도전과 창의를 기반으로 하는 선견(先見)·선결(先決)·선행(先行) 등 3선(先)"이라고 했다. 그는 신년사에서도 "LTE 경쟁에서 LG유플러스의 상황은 전함 13척으로 333척의 왜군을 무찔러야 하는 명량대첩과 같다"고 말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23번 벌인 전투에서 일본보다 병력은 약했지만,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펴듯 둘러싸서 공격하는 진법)' 같은 독창적 전술과 거북선 등 신무기로 승리한 데서 영감(靈感)과 용기를 얻자는 취지에서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지금 우리 재계 리더들이 가장 고민하는 과제는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중심을 잡고 에너지를 결집·분출하며 조직을 강력하게 견인하는 것"이라며 "이순신은 적은 자원과 창조적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용희 세종대 석좌교수는 최근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경제 전쟁과 이순신 리더십' 강연을 통해 "이순신은 손자병법의 원리이기도 한 '선승구전(先勝求戰·미리 이겨놓은 후 싸운다)'의 자세로 싸웠다"며 "한국이 경제 전쟁 무대에서 이기려면 이순신처럼 진정성과 전략을 겸비한 리더가 많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