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삼성전자가 주도한 타이젠 연합의 성과는 보잘 것 없다. 구글, 애플이 양분한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을 뚫지 못했고 전 세계 개발자들을 생태계에 끌어들이지도 못했다. 올 들어 삼성전자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자 모바일 운영체제로서의 타이젠의 미래는 어둡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타이젠은 어디로 가야 할까. 조선비즈는 지난 1일 태성빌딩 연결지성센터에서 전문가 좌담회를 열고 삼성전자와 타이젠, 오픈 소스의 미래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심호성 한국공개소프트웨어협회 부회장, 손영수 NHN넥스트 교수, 정영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플랫폼 연구실 실장(발표 순)이 연사로 참여해 오픈소스 OS 시장 전망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소프트웨어 경쟁력 없이 하드웨어 제조만으로는 삼성전자의 미래는 어둡다고 내다봤다. 타이젠으로 상징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과 오픈 소스 진영과의 연대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이젠을 스마트폰의 OS로 밀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모바일 퍼스트 전략을 버리고 스마트홈이나 사물인터넷(IoT)의 운영체제로 활용해 차세대 플랫폼을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좌담회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① 모바일은 이미 늦었다
토론자들은 중국 업체들의 약진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더욱 세분화하고 있다며 모바일 운영체제로 타이젠은 한발 늦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올 2분기에 현지 업체 샤오미(小米)가 점유율 14%를 기록, 삼성전자(점유율 12%)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 기관 IDC에 따르면 2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23.1% 늘어난 2억 9530만대를 기록했는데,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업체의 약진이 두드려졌다.
손영수 NHN넥스트 교수는 “타이젠은 사용자 경험(UX) 등에서 크게 뒤처져 있으며 중국의 샤오미가 내놓은 UX 환경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파이어폰’을 내놓은 아마존, 중국의 샤오미 등 안드로이드를 변형한 안드로이드 오픈 소스 프로젝트(AOSP) 진영이 제3의 모바일 OS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샤오미의 경우, 별도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앱이 많다. 특히 샤오미의 독특한 인터페이스 MIUI 덕분에 사용자들은 삼성전자 갤럭시나 애플 아이폰 사용자보다 스마트폰에 더 오래 머무른다.
② 타이젠 포기해야 하나...스마트홈과 사물인터넷의 플랫폼 선점해야
토론자들은 타이젠의 약점이 많지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심호성 한국공개소프트웨어협회 부회장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로 대표되던 제조업 중심의 시대는 끝났으며 앞으로는 ‘서비스드 바이 코리아(Serviced by Korea)’가 평가받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면서 “운영체제를 다루는 능력과 서비스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준 ETRI 실장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오픈 소스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면서 “글로벌 기업의 기술 주도권 싸움이 사실상 오픈 소스 진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삼성전자가 모바일 퍼스트 전략을 내려놓고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 등 미래 먹거리의 플랫폼으로 타이젠을 개발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점쳤다.
심호성 부회장은 “플랫폼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며 “삼성전자는 타이젠을 단순한 OS보다는 가전, 자동차 등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보고 좀 더 주도적으로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자동차 등 국내 다른 대기업과 연대하면 좋은 기회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영실 실장도 “서비스 트렌드를 살펴볼 때 스마트폰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여러 기기에서 사용 가능한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하는 편이 낫다”면서 “하루아침에 성공 가능 한 OS는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되 처음부터 비즈니스에 활용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실장은 타이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삼성전자가 타이젠을 카메라에 탑재한 것을 꼽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타이젠 기반의 미러리스 카메라 'NX300'을 출시했다. 정 실장은 “카메라에 타이젠 OS를 탑재한 뒤에 부팅 시간이 빨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 구글과 애플의 양강 구도인 모바일에서는 타이젠이 비집고 들어갈 곳은 없어 보이고 청소기구, 냉장고, 자동차, 의료 시스템 등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차세대 플랫폼 시대를 선점하면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③ 삼성전자 특유의 폐쇄 문화 바뀌어야 오픈 소스 성공한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 시장에서 투트랙 전략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타이젠을 공동 개발한 인텔과 오픈 인터커넥트 컨소시엄(OIC)을 결성한 데 이어 구글이 인수한 네스트가 주도하는 스레드(Thread) 그룹에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구글 종속과 독자 노선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특유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삼성전자의 오픈 소스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나치게 높은 스팩의 하드웨어, 독자 OS 개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용자경험(UX), 사용자환경(UI), 디자인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삼성전자는 갤럭시 S2부터 S5까지 동일한 디자인의 메일 앱을 제공하고 있다”며 “대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기에 탑재된 OS보다 제품이 주는 다양한 경험과 감동”이라고 말했다.
심 부회장은 “오픈 소스에서 성과를 내려면 돈도 많이 내야 하지만, 꾸준히 활동도 해야 한다”면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 기업과 단체들은 오픈 소스 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경우 리눅스 담당자가 2년마다 바뀌는 데, 교우 관계(friendship)를 중시하는 오픈 소스 진영의 특성을 감안하면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