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글랜이글스병원 별관 1층에 위치한 안과는 병원 안에 있긴 하지만, 독립 운영되고 있다. 병원 안에 주인이 다른 병원이 입점한 이른바 '원내원(院內院)' 형태다. 환자가 안과 외에 다른 진료, 검사를 필요로 하면 병원 내 다른 진료과를 이용한다. 병원으로서도 이득이다. 환자가 많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안과를 개설하지 않았지만, 안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4일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원내원 개설의 장점을 논의했다. 원내원이란 병원의 일부 시설을 개원하고자 하는 의사 또는 의원에 임대를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상점 안에 상점을 임대하는 형태의 ‘숍인숍(Shop in shop)과 유사하다. 병실, 진료시설, 검사장비 등을 모두 임대해 사용할 수 있으며 병원과 의원 간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 공론화하진 않았지만, 의료법상 문제 될 것은 없다. 의료법 제39조 ‘시설 등의 공동이용’ 조항을 보면, 의료인은 다른 의료기관 장(長)의 동의를 받을 경우 해당 의료기관의 시설 장비, 인력 등을 이용해 진료할 수 있다. 또 의료기관장은 환자 진료에 필요하면 해당 의료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의료인에도 진료를 맡길 수 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은 “원내원이 도입되면 현재 60% 수준에 불과한 중소병원의 병상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며 “남는 병실을 유동적으로 사용하면서 병원급 의료기관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병원은 개인 의원을 통해 추가적인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의사 인력을 구하기 곤란하거나 환자가 적은 과목이라면 원내원 형태의 개설, 협동진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의원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개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공간 임대료, 장비 사용료 등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입원실, 수술실, 장비 등을 구비하지 않은 사무실형 의원 개설도 가능하다. 검사가 필요할 때도 같은 건물의 병원에서 즉각 검사를 한 다음 연속적인 진료가 가능하다.
◆병원은 프랜차이즈 사업자, 의원은 가맹점주?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일단 의료비에서 병원과 의사 비용을 별도 분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시설, 장비 사용료 등을 명확히 책정하기 어렵다. 수익분배 기준 설정도 관건이다. 이평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원내원은 자원의 공동 활용이라는 장점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의사와 병원 간 기능 분담이 미흡하다”며 “개설과 운영 조건은 물론 수익배분, 의료사고 책임 문제 등 세부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선 동네의원 원장들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내과의원 원장은 “음식점, 편의점 등 대형 프랜차이즈 사업자가 가맹점주들에게 엄청난 수수료를 물리는 갑의 횡포가 흔하다”라며 “병원 역시 고가의 임대료, 수수료를 물릴 수 있고 환자가 늘어나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피부과의원 원장도 “동네의원도 규모를 크게 해야 생존 가능한 현실”이라며 “병원에 입점하려는 의원들이 늘어날수록 결국 자본에 더 종속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자 없으면 안 들어가고 환자 많으면 공간 없고
이미 기존에 있는 형태라는 시각도 많다. 실제로 중앙대병원 등 치대가 없는 학교법인은 치과 운영을 외부에 맡기고 있다. 한 상가 안에 서로 다른 진료과목이 입점해 종합병원 효과를 노린 메디컬 빌딩도 많다. 건물주 겸 병원장이 건물 병원에 없는 진료과 의원을 유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박병상 하나이비인후과네트워크 하나닥터스넷 대표는 “학교법인, 개인소유 병원에서는 암암리에 임대 수익사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환자가 별로 없는 병원에 들어가려는 의원은 적고, 환자가 많은 병원은 내줄만한 공간이 없어, 결국 극소수 병원 외에는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대신 병원들은 ‘개방형 병원’ 제도로 확대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병원 시설을 고용된 의사들에 국한하지 않고 외부 의료인에게 개방, 공동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한 병원장은 “다른 사업에 비해 유독 병원만 수익 사업이 막혀 있다. 원내원 제도를 활성화해 부족한 진료과목을 채우고 임대 수익도 도모할 수 있다.”며 “감기에만 걸려도 대형병원을 찾는 현실에서 중소병원과 의원들이 상생할 수 있는 통로를 계속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