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서 앱과 동영상, 음악을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삼성 허브’ 사업을 축소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쓸 때 구글이 만든 가이드라인에 벗어나 수정하지 못하도록 했고, 구글의 앱스토어인 플레이 스토어와 다른 별도의 앱 스토어도 구축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타이젠을 탑재한 기어를 내놓은 ‘외도’는 곧 구글의 압박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지난 6월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 대회 ‘구글 I/O 2014’ 행사에서 안드로이드의 웨어러블 기기용 OS인 ‘안드로이드 웨어’를 탑재한 스마트워치 ‘기어 라이브’를 선보였다. IT전문가들은 “구글의 압박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타이젠 제품 라인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다시 안드로이드에 줄을 선 것이다.
이런 굴욕을 당한 삼성전자는 구글로부터 당근도 여러가지 챙겨받았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올해 1월 광범위한 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특허 공유)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진영 제조사 가운데 삼성전자를 최우선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타이젠에 '올인'하기에는 구글이 만들어 놓은 생태계가 너무 크고 구글이 제시한 카드를 버리기에도 아깝다.
시장조사기관 IDC 자료를 보면,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올해 1분기 기준 81.1%에 달하고 있다. 이 점유율을 뜯어보면 전체 안드로이드폰 출하량에서 삼성전자의 비중은 40% 수준이다. 전 세계에 출하되는 구글의 안드로이드폰 10대 중 4대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이란 것이다.
전체 안드로이드폰에서 나오는 영업이익 비중으로 보면 삼성전자 쏠림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도현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안드로이드폰을 만드는 제조사 중에 이익을 내는 곳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며 “각 업체 영업이익을 직접 계산해보니 안드로이드폰 영업이익 중 삼성전자 비중은 99%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삼성전자가 내놓고 있는 스마트폰 기종의 99%는 안드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타이젠폰은 아직 출시하기 전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OS인 ‘윈도폰’ 지원 기종은 2개로 전체 점유율로 포함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에 구글이 ‘변형 안드로이드 진영’과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상황도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를 버릴 수 없는 또다른 이유로 떠올랐다.
구글은 2008년 10월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OS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하며 이른바 ‘안드로이드 오픈 소스 프로젝트(AOSP)’를 출범했다. 중국 샤오미(小米)를 비롯해 아마존, 노키아 등이 AOSP를 활용해 스마트폰을 내놓은 덕분에 모바일 OS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AOSP 진영이 전체 안드로이드 점유율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크자 구글은 애플이 아니라 AOSP 진영이 경쟁자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구글은 이번에 내놓은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 ‘안드로이드L’에서 신규 기능 대부분을 AOSP에 반영되지 않게 했다. 이런 상황은 구글과 돈독한 파트너십을 보유한 삼성전자에 유리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OS에서는 기존처럼 구글의 안드로이드 우선 전략을 유지하면서 스마트폰 외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타이젠을 활발하게 적용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 셈이다.
손영수 NHN넥스트 교수는 “구글이 축적하고 있는 서비스도 삼성전자가 사실상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번에 구글이 선보인 ‘안드로이드 오토(차량용 내비게이션)’에 담긴 자율주행 솔루션은 자동차 제조회사를 압박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지만, 타이젠은 단말기 위주의 서비스 외에 실제 서비스가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덕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부센터장(부사장)은 “삼성전자는 원래 멀티 OS 전략을 기본 방향으로 소비자와 시장이 원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라며 “구글과 변함없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