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한 사내 유보는 투자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적정한 사내 유보금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 법인세를 부과해 건전한 기업 경영을 유도해야 한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같이 지적하며 지난해 11월 자기자본이 300억원을 초과하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의 기업에 대해 적정한 수준을 초과하는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주장은 현재 사내 유보금에 과세해야 한다는 측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요지는 크게 두 가지다. ‘사내 유보금이 높으면 투자를 안 하는 것이다’와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 유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명제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

SK, 대규모 투자 했지만 유보율 상승

투자를 늘리더라도 사내 유보율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은 SK하이닉스 사례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2012년 3월, 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돼 SK하이닉스(000660)로 재탄생했다. 그 동안 부채가 많아 흔들리던 SK하이닉스는 재무구조가 안정을 찾았고, 반도체 수요가 늘자 기록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하이닉스를 인수한 자금은 SK텔레콤(017670)이 댔다. SK텔레콤은 3조3747억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이 금액은 2011년 한 해 동안 SK텔레콤이 벌어들인 순이익의 2배가 넘는다.

그러나 SK텔레콤의 사내 유보금은 큰 차이가 없다. 2011년 말의 유보액은 14조277억원, 2012년 말은 14조2205원으로 2000억원쯤 늘었다. 유보율도 같은 기간 31424%에서 31856%로 소폭 증가했다.

투자를 하지 않아 사내 유보금이 늘어난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현실은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는데도 유보금이 증가했다. 투자와 유보금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내 유보율이 34829%나 된다. 30대 그룹 계열사 중 세 번째로 높다.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과세 대상 1순위 기업이 될 것이다. 한국 경제에 중요한 기업에 3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 경영을 정상화시켰는 데도, 유보율이 높으니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페널티를 물어야 할까?

이익을 내면서 유보율 낮추라는 것은 모순

SK텔레콤이 하이닉스에 3조원을 투자했지만 유보금이 늘어난 것은, 사내 유보금과 투자는 반대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분 투자가 아닌 설비 투자가 늘더라도 유보금은 증가할 수 있다.

사내 유보율은 기업이 영업활동이나 지분 투자로 얻은 잉여금을 합친 금액을 자본금으로 나눈 것이다. 잉여금과 자본금은 재무상태표(대차대조표)에서 오른쪽(대변)에 들어간다. 반면 투자와 관련된 현금과 자산은 왼쪽(차변)에 기재된다.

기업이 남는 돈으로 투자를 하는지 보려면, 유보율을 봐서는 알기 힘들다는 의미다. 오히려 투자를 하더라도 사내 유보율은 증가할 수 있다. 순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투자에 사용할 경우가 그렇다.

자료: 한국개발연구원. 기업이 투자를 늘리더라도 유보율은 증가할 수 있다.

순이익을 계속 내고 있는 회사는 사내 유보율이 증가하게 된다. 유보율을 계산할 때 분모가 되는 자본금은 그대로인데, 분자인 잉여금이 순이익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적자가 나지 않으면서 유보율을 줄이려면 결국 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을 해야 하는데, 성장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정상적인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당하는 것은 자기 자본은 거의 없으면서 많은 돈을 빌려 회사를 인수하는 차입매수(LBO) 방법을 쓰는 사모펀드나, 기업사냥꾼이 주로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행동은 기업을 병들게 한다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국 기업, 현금은 줄고 투자는 늘렸다

통념과 달리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는 늘었다. 그리고 보유한 현금의 비중은 줄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 자산 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5.6%에서 2012년 4.8%로 감소했다. 반면 투자자산은 13.9%에서 17.0%로, 기계장치 자산은 6.3%에서 7.3%로 증가했다. 대기업으로 한정하면 투자자산과 기계장치 자산 비중의 상승폭이 더 커진다.

현금 비중이 준 것은 번 돈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2009년 이후 2012년까지 4년간 이익 잉여금이 324조원 늘었다. 이 기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3조원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투자자산은 216조원, 설비자산은 161조원, 기계장치 자산은 81조원 증가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김준석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상장기업의 투자활동이 이전보다 활발하며, 투자자금은 유보 이익을 적극 활용해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수치에는 국내·국외 투자가 분리돼 있지 않다. 우리가 체감하는 기업의 투자와 지표로 나타난 투자 사이에 온도차가 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익을 쌓아두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틀린 말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그에 걸맞은 대책을 써야지, 유보금 수치만을 놓고 줄여야 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