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訪韓)을 계기로 내년 자이언트 판다 한 쌍이 우리나라에 오게 됐다. 중국 정부는 상대국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중국에만 사는 판다를 '선물'로 보내곤 한다. '판다 외교'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판다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선물이다. 대표적인 멸종 위기 동물로, 야생에 사는 판다는 최대로 잡아도 3000마리에 불과하다. 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대나무만을 고집하는 극도의 편식(偏食)을 한다. 곰처럼 생긴 판다는 어떻게 대나무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철마다 대나무 식단 바꿔
미국과 중국 연구진은 6년에 걸친 추적 끝에 판다가 극단적인 편식으로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밀을 밝혀냈다. 같은 대나무라도 철마다 종류나 먹는 부위를 달리해 영양소 균형을 맞춘다는 것.
중국 과학원 동물연구소와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호주 시드니대 공동 연구진은 중국 서북부 친링(秦嶺) 산맥에 사는 판다 암수를 각각 3마리씩 골라 무선 송신기를 달고 6년 동안 추적했다. 판다의 식단은 식물의 필수 영양소인 질소와 인, 칼슘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판다가 먹는 대나무는 두 종류였다. 해발 2200m 이상에서 자라는 전죽(箭竹)과, 1700~2100m에서 자라는 목죽(木竹)이다. 전죽은 키가 작고 대가 가늘어 화살대를 만드는 데 쓰인다. 목죽은 10m까지 자라고 대도 굵다.
판다는 짝짓기를 하는 봄에는 질소와 인이 풍부한 목죽의 죽순을 주로 먹었다. 6월이 돼 목죽 죽순의 영양분이 부족해지면 고도가 높아 아직 덜 자란 전죽의 죽순을 먹기 시작했다. 죽순은 질소와 인은 많지만 칼슘은 부족하다. 판다는 7월부터는 칼슘이 풍부한 전죽의 어린잎을 먹었다.
판다 암컷은 8월에 새끼를 낳았다. 이때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 칼슘이 가장 많은 목죽의 어린잎을 먹었다. 칼슘은 수유(授乳)에 필수적이다. 결국 판다는 대나무의 생장에 맞춰 영양 균형을 맞출 수 있게 식단을 짠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달 초 국제 학술지 '기능 생태학' 인터넷판에 실렸다.
◇장내 미생물이 섬유소 분해 도와
판다는 몸의 형태나 울음소리, 겨울잠을 자지 않는 점 등을 기준으로 오랫동안 곰보다 너구리에 가까운 동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 세 동물은 3000만~2500만년 전 공동 조상에서 분리됐으며, 판다는 너구리보다 곰에 더 가까운 것으로 판명됐다.
판다는 곰처럼 육식동물의 소화기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대나무를 소화할 수 있을까. 육식동물은 초식동물보다 소장(小腸)의 길이가 짧다. 소 같은 초식동물처럼 되새김질할 수 있는 위도 없다. 중국 학술원 동물학연구소는 판다의 대나무 소화용 비밀 무기가 장내(腸內) 미생물이라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야생 판다 7마리와 동물원의 판다 8마리 등 15마리의 대변을 채취해 그 안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여기서 판다에게만 있는 7종의 미생물을 포함해 모두 13종의 미생물에서 나온 5522개의 유전자가 발견됐다. 특히 3개는 식물 섬유소에 대한 소화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였다. 판다는 이 같은 장내 미생물 덕분에 초식동물처럼 대나무를 소화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판다가 육식(肉食)을 포기하고 대나무만 먹게 된 것은 700만~200만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 2010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네이처'에 420만년 전부터 판다에게서 단백질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유전자의 기능이 정지됐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그 당시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 판다의 먹잇감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결국 판다는 살아남기 위해 고기에 대한 입맛까지 바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