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한류열풍이 중국인의 입맛도 바꾼 듯하다. 치킨이나 닭강정, 한국 카페의 레모네이드를 찾는 중국인이 늘었다. 고급 한식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엔 떡볶이가 메뉴에 오르고 마트나 쇼핑몰 식품코너에선 과자, 라면, 음료 등 익숙한 한국 제품들이 눈에 띈다. 한국보다 먹거리 선택에 신중한 중국 소비자에게 ‘한국’ 먹거리는 안전하고 믿을만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 현지 르포를 통해 중국 속 먹거리 한류 열풍과 국내 식품 업체들의 성공비결을 취재했다. [편집자주]
“따라한 제품이 또 나왔다고요? 이번엔 특허권이 있으니 문제 없을 겁니다.”
17일 중국 베이징 인근 랑방 개발구에 위치한 오리온 스낵공장. 중국에서 초코파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취재하던 중 정일규 공장장이 전화를 받았다.
문제가 된 제품은 오리온에서 출시되는 껌(한국명 펌프껌)이다. 뚜껑을 들었다 내려놓으면 저절로 껌이 나오는 용기를 따라한 제품이 나오자 당일 긴급회의가 열렸다.
◆중국 내 점유율 1위 오리온 제품…유사제품에 골머리
오리온은 중국 내 과자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초코파이’는 전체 파이류의 35%, 초콜릿 코팅류 60%를 차지하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예감’은 구운 감자스낵류 1위, ‘오감자’는 감자스낵류 1위, ‘다낭파이’는 커스터드류 1위 등이다.
많은 부문에서 시장 1위지만 오리온은 인기만큼 ‘미투(유사) 제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코파이의 경우 포장지까지 똑같은 ‘짝퉁’ 제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김수걸 오리온 중국 법무 총감은 “1급 도시에선 짝퉁제품을 유통하기 힘들지만 3~4급 도시에선 유사 제품뿐 아니라 짝퉁까지 팔리고 있다”며 “초코파이 짝퉁은 포장지 뒷면 오타를 보고 찾아냈지만 생산 업체는 잡진 못했다”고 말했다.
강기명 오리온 중국 마케팅 총감은 “초코파이는 워낙 유명해서 이제 소비자도 구별 능력이 생겼다. 소비자 선택에 따라 유사제품이 많이 없어진 상태다. 중국엔 오리온 제품들을 베껴 1~2년 팔다가 사라지는 짝퉁이 많다”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 동쪽에 위치한 까르푸(궈 잔 까르푸)와 시내 동북쪽에 위치한 롯데마트(져우 씨엔 챠오 롯데마트)에서도 오리온의 미투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 오리온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특히 초코파이 미투제품이 가장 많았다.
마트를 찾은 손님들을 살펴보니 한국과 달리 한참을 매대 앞에 서있는다. 제품마다 포장지를 돌려가며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유통기한은 얼마나 남았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봤다. 현지 오리온 영업 담당자는 “중국 고객은 유통기한이나 성분에 민감하다”며 “제품 하나를 고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고 말했다. 과자 매장을 찾은 몇몇 고객은 제품을 살펴보더니 빈 손으로 자리를 떠났다.
초코파이 미투제품을 직접 구매해서 비교해봤다. 포장지와 사진은 비슷했지만 포장을 뜯어보니 큰 차이가 났다. 우선 겉으로 보기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가장 통통하고 초콜릿도 균일하게 발라져 있었다. 마시멜로도 가장 풍부하게 들어가 있다.
세 가지 제품을 먹어보니 오리온 제품의 비스킷이 가장 촉촉했다. 단맛도 오리온 제품이 가장 강했다. 유사제품들은 과자 부스러기가 많이 나 먹기 불편하고 비스킷 맛이 많이 나서 초콜릿파이로서 매력이 떨어졌다. 초코파이 유사제품을 함께 맛 본 한국 사람들은 “몸이 나빠지는 맛이다”, “이게 무슨 맛이냐”, “초코파이가 맞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오리온 중국 성공 비결 “중국 회사가 돼라”
'ONLY ORION, WORLD CLASS, CHINESE COMPANY'
베이징에 위치한 오리온 중국 법인 사무실 벽에 쓰여있는 문구다. 특히 'CHINESE COMPANY(중국회사)'란 문구는 중국에선 중국기업이 돼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리온 중국법인 직원 대부분도 중국인이다. 한국인은 전체 직원의 0.4%에 불과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곳 저곳에서 순 중국말만 들릴 뿐이다.
오리온을 한국회사라고 인지하는 소비자는 50% 정도다. 강기명 총감은 “중국 소비자 절반은 오리온을 한국 기업으로 알고 있지만 25%는 대만, 홍콩 등 화교계 기업으로 나머지 25%는 중국 기업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을 출시할때도 철저하게 현지화를 꾀한다. 오리온은 맛부터 마케팅까지 모두 중국에 맞춰 새 제품을 만들어냈다.
초코파이는 오리온 제품 중 가장 많이 현지화한 제품이다. 1997년 중국에 처음 초코파이를 생산할 땐 한국보다 10g이 적은 28g에 만들었다. 한국과 같은 크기로 제품을 만들다간 제품 가격이 20위안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강기명 총감은 “20위안이라는 기준은 한국의 990원과 1000원 차이와 비슷하다”며 “더 이상 제품 크기를 줄이면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28g(18.5위안)에 제품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2010년 가격을 올리며 최적의 맛을 선보일 수 있는 34g으로 크기를 키웠다.
중국과 한국의 초코파이는 맛도 다르다. 당도와 초콜릿의 쓴맛 등을 조절했고 중국 제품의 우유향이 더 강하다. 강기명 총감은 “한국은 당도, 불포화지방, 트랜스지방 등 소비자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제품이 달라졌다”며 “중국에서 생산되는 초코파이가 본래 초코파이 맛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브랜드 전략도 차별화했다. 브랜드 이름도 ‘하오리여우파이’로 바꿨다. ‘오리온’에 한자를 붙여 만든 단어로 ‘좋은 친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선 ‘情(정)’을 쓰는 것과 달리 ‘仁(인)’을 쓰며 중국인의 공감을 얻어냈다.
◆앞으로 성장 전략 “대표 제품과 유통망 확대”
오리온은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식품업체다. 중국 매출은 2012년 1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매출보다 중국 매출이 더 많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중국 내 파이 시장을 키웠다. 지난 5년간 중국 파이 시장은 15% 성장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그보다 빠른 20% 성장했다. 유사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파이 시장이 커졌다. 동시에 오리온 초코파이의 시장점유율도 아울러 커졌다.
오리온의 미래 성장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카테고리별로 주요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다. 파이, 케이크 등 카테고리별로 오리온 제품을 대표 상품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주력 상품은 ‘다낭파이’다. 중국의 파이류 시장은 60억위안(약 9800억원)에 이른다. 다낭파이는 커스터드(우유, 계란, 설탕 따위를 혼합해 가열한 서양과자)류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하며 업계 1위다. 다만 아직 ‘커스터드’하면 ‘다낭파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다. 오리온은 다낭파이에 ‘엄마의 선택’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먹거리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중국에서 안전한 간식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함이다.
또 다른 성장 전략은 유통망 확대에 있다. 중국은 도시별로 급수가 나뉘어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는 1급이고 급수가 높아질수록 유통환경은 열악해진다. 오리온 제품은 1~2급 도시엔 모두 정착했다. 올해엔 3급 도시로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강기명 총감은 “3~4급 도시에 큰 상점이 생기면 오리온 제품이 가장 좋은 자리에서 팔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1~2급 도시에선 작은 상점으로 제품 확산을 꾀한다.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강기명 총감은 “작은 도시의 큰 상점, 큰 도시의 작은 상점으로 유통망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