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케미칼이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 복제약에 대한 임상시험 및 준비를 마치고 이달 말 식약처에 시판(市販) 허가를 신청할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다국적 제약사 암젠이 개발한 엔브렐은 세계 10대 의약품 중 하나로 이 제품의 시장 규모만 9조원에 달한다. 한화케미칼은 올해 안으로 판매 허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가 승인을 받으면 국내 기업 중 처음 엔브렐 복제약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엔브렐 복제약은 삼성그룹LG그룹도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고한승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이 끝나면 2016년쯤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에선 LG생명과학이 이 제품의 임상시험을 맡고 있다.

대기업들이 바이오 제약 사업에서 '성공 신화(神話)'를 만들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기존 제약사 수준을 넘어 삼성·SK·LG·한화 등 10대 대기업이 바이오 제약 부문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야심 찬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성용 베인앤컴퍼니 서울사무소 대표는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이후 이렇다 할 새 성장동력을 못 찾던 한국 기업들이 바이오 제약을 '제2 도약'을 위한 유력 후보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 부문은 '고속성장 業種'

한국 대기업들이 이 부문에 사력(社力)을 쏟는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높은 성장성이다. 글로벌 제약 시장 조사기관 'IMS헬스'는 "바이오 의약품 세계 시장 규모가 2010년 1380억달러(약 140조원)에서 2020년 2530억달러(약 255조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조선(造船)·철강·자동차 같은 업종이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 상태에서 바이오 분야는 고령화·웰빙 등에 힘입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유망 성장 업종이라는 것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화학 등 대규모 장치산업에서의 성공 경험과 노하우를 대량생산 시스템이 필요한 바이오 복제약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여기에 정부가 최근 수년간 집중 육성한 연구개발 역량을 접목하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분야는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치산업 중심의 우리나라 대기업과 잘 맞는다"며 "대기업들이 투자와 연구 역량을 집중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빨리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IT를 바이오 사업에 접목시켜 시너지(결합)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차세대 주력 5대 신성장 사업 가운데 바이오산업을 공식 포함시켜 놓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5일 삼성전자로부터 104억원대의 바이오 의약품 관련 기술 자산을 넘겨받았다.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는 내년 8월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LG생명과학은 지난해 총매출의 20% 정도인 750억원을 R&D에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8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항암·통풍·심근경색 치료제 등 신약 개발과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3대 핵심 사업인 대사질환 치료제, 바이오 의약품, 백신 분야에 연구개발 역량과 자원을 쏟는 한편, 임상 1상시험을 진행 중인 항혈전 신약과 세포 보호제의 개발 등 새로운 혁신 신약 개발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2007년부터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착수한 한화케미칼은 엔브렐 복제약 외에 유방암·대장암 등 항암제 분야의 바이오 복제약도 병행 개발 중이다.

SK그룹도 바이오 제약 분야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세포 배양 백신과 바이오 신약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올 3월에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 파스퇴르와 차세대 폐렴구균 백신 공동 개발 및 판매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판매는 다국적 제약사에 맡겨

하지만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예컨대 한국 기업들은 신약이나 복제약을 만들어 직접 세계 각국의 병원에 납품하기 힘들다. 이미 세계 시장을 장악한 로슈·노바티스·머머크·화이자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탄탄한 네트워크와 마케팅 파워를 넘어서기가 매우 힘든 탓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 기업들은 바이오 복제약 연구개발에 성공하면 글로벌 제약·유통회사 등에 해당 판매권을 넘기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 중이다.

IT처럼 단기 승부를 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중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 분야는 보통 한 번 연구를 시작해 이익을 내기까지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최윤희 산업연구원(KIET) 미래산업연구실장은 “압축 성장과 단기 성과 내기에 익숙한 대기업들이 예전 스타일만 고집했다가는 패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