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대구시 동구 신서동에 자리 잡고 있는 대구혁신도시. KTX(고속철도) 동대구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자 회색 건물로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지 옆 도로를 따라 들어가자 대형 크레인 사이로 지난해부터 입주를 시작한 한국감정원·산업단지공단·한국교육학술정보원 사옥과 단독주택 단지들이 들어서 있었다.
손민식 한국토지주택공사(LH) 차장은 "대구는 11개 이전 공공기관 중 5곳이 이미 이주해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에 진행이 가장 빠르다"며 "아파트도 내년부터 본격 입주를 시작하며 2017년까지 총 7000가구가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권에 밀집해 있던 115개 공공기관을 지방 10개 도시로 이전·분산하는 혁신도시 시대가 올해 원년(元年)을 맞았다. 부지 조성과 기반시설 공사가 사실상 100% 완성됐고, 올해 말까지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70%(81개) 정도가 혁신도시로 이주할 예정이다. 그 여파로 지방 부동산 시장은 집값 상승과 신규 아파트의 높은 청약률 등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혁신도시 프로젝트의 핵심인 기업 유치 실적은 미미하고 공공기관 직원들은 여전히 이주를 꺼려 '반쪽짜리' 도시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펄펄 끓는 혁신도시 부동산 시장
경북 김천시에서 동쪽으로 10여㎞ 떨어진 경북혁신도시. 혁신도시 초입에 있는 KTX 김천구미역 바로 앞에는 이번 달 분양 예정인 '중흥S클래스 프라디움'을 비롯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5곳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곳은 5~6년 전까지만 해도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만 있던 농촌 지역이었다. 하지만 KTX역과 교통안전공단·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이 하나 둘씩 들어오자 경북 지역의 핵심 주거지로 변모하고 있다.
대구·부산·경북 김천·전북 전주 등에 들어선 혁신도시는 올해 지방발(發) 부동산 훈풍(薰風)의 주역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0개 혁신도시 집값은 지난 1년간 3% 올라 전국 평균(1.4%)을 웃돈다. 올 들어 혁신도시에서 신규 분양한 아파트 9개 단지 중 7곳이 1순위에 모두 팔렸다. 특히 올해 4월 전북혁신도시에서 분양한 '호반베르디움'(84㎡)은 최고 169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고 아파트 분양권에는 2000만~3000만원씩 웃돈이 붙었다. 지난달 대구혁신도시에서 청약 신청을 받은 '서한이다음 3·4차'(477가구) 역시 1순위에서만 3600명이 몰렸다. 서한 김민석 이사는 "혁신도시가 속도를 내면서 작년 5월 1차 분양 이후 매번 분양할 때마다 청약자가 2배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상업·단독주택 용지 판매율도 90%에 육박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4월 울산혁신도시에서 상업용지(2만4300㎡)를 555억원에 사들였고, 지난 3월 대구혁신도시에 공급된 단독주택 용지는 691대1의 입찰경쟁률을 기록했다.
공공기관 직원은 물론 주변 지역 투자자가 몰리면서 땅값도 급등했다. 5년 전, 3.3㎡당 20만~30만원에 거래됐던 경북혁신도시 주변 상업 용지는 최근 3.3㎡당 300만원 정도에 매물이 나온다.
◇기업 유치 실적 미미…自足 기능 미지수
공공기관 청사와 상가 등이 몰려 있는 경북혁신도시 중심 상업지에서 북쪽으로 10여분 올라가자 약 30만㎡ 크기의 공터가 보였다. 이곳은 기업·연구소 등이 들어서는 산·학·연 클러스터. 하지만 지금까지 건축 신축은커녕 땅 한 필지도 팔지 못한 상태다. 활기를 띠는 아파트·상업·업무시설과는 달리, 기업·연구소 유치 실적은 대구·충북 혁신도시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경우도 많지 않은 편이다. 작년 9월 대구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감정원은 애초 60실로 계획된 독신자용 기숙사 방 중간에 임시 벽을 설치해 120실로 늘렸다. 가족과 함께 이사 오지 않고 홀로 부임한 기혼자들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까지 대구혁신도시에 공급된 아파트 2800가구 중 이전 기관 종사자가 분양받은 물량은 약 15%(400여 가구)에 그쳤다. 충북·강원 등 수도권과 가까운 혁신도시에서는 수도권에 머물면서 출퇴근하는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혁신도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려면 생활 기반시설의 조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상업·문화시설·대중교통 등이 부족해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사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들이 계획대로 이전을 마치기 위해서는 기존 청사로 사용하던 부동산을 서둘러 매각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시공학)는 "이전 기관 직원들이 이사를 계속해서 미루면 세종시처럼 집값과 전세금이 동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매각이 어려운 사옥은 임대 등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