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아의 국립박물관(오른쪽) 과 성당. 모두 오스카 니마이어의 작품이다.

먼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꼭 비행기 모양이다. 비행기도 보통 비행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훨씬 뒤에나 만들어질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할 법한 모양.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이 계획 도시의 형상이 그렇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도시 중에서는 가장 근래에 만들어진 곳이다. 1956년의 일이었다.

당시 쿠브체크 대통령과 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펼칠 새로운 수도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야심만만한 도시 계획가 루시우 코스타와 야심에 관한 한 그보다 덜하지 않은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포함된 팀이 꾸려졌다. 니마이어라면 누군가. 도시 계획으로 유명한 20세기 모던 건축의 아이콘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 아니던가.

국회 건물. 이 안에 카페가 있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반바지를 입었다고 입장을 거부당했다.

이 ‘드림팀’이 새 도시에 구현하려 했던 것은 ‘질서와 진보(Ordem e Progresso)’ 두 가지 높은 이상이었다. 지금도 펄럭이는 브라질 국기 위에 아로새겨진 두 단어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근대 실증주의 철학자 오쉬스트 콩트의 사회 발전 사상이 깊이 스며든 결과였다.

도시 설계가들은 거대한 비행기를 떠올리고 그 긴 축을 따라 넓은 도로를 만들었다. 도시 전체는 기능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눴다. 행정구역과 상업지역, 주거지역. 행정구역은 비행기의 조종석에 해당하는 곳에다 배치했다.

천재 건축가 니마이어는 기발한 시멘트 건물들로 공백을 장식했다. 대통령궁과 국회를 포함한 행정 건물 외에도 박물관과 성당도 지어 넣었다. 20세기풍의 시멘트 건물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풍경은 브라질리아뿐이리라. 황량하다.

국립 도서관 (오른쪽 건물) 앞에서 본 도시의 풍경

도심에 서서 둘러보자니 궁금해졌다. 대체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한 걸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자동차를 위한 도시. 나 같은 뚜벅이 여행자가 발걸음에 의존해 다닐 수 있는 곳은 분명코 아니다.

거리를 여기저기 가로지른 건널목의 구조도 독특하기 그지없다. 어떤 곳은 도로를 세 번에 걸쳐 건너야 목적했던 곳에 가닿을 수 있다. 보행자보다는 차량의 흐름을 앞세운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 건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콘크리트의 구조가 당시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박물관과 성당을 구경하고 났을 때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태양의 방사열에 목이 탔다. 어디 쉴 만한 곳이 있을까. 두리번대다 정부 청사 건물들이 모여 있는 행정 구역 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있으니, 뭐라도 있겠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물었다. 하지만 웬걸, 이 곳에 카페 같은 것은 없단다. 그런 건 상업 구역으로 가 보란다.

정의의 궁전, 즉 법원이다. 콘크리트 벽에서 물이 떨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노점상에서 뭔가를 사 먹고 있다. 이상적인 도시 설계를 꿈꿨던 계획가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거리의 사람들이 메우고 채우고 있다.

새 수도를 건설할 때도 그랬다. 땅을 고르고 건물을 지어올리는 데 필요한 노동력은 북부에서 데려왔다. 인공의 도시는 엄청난 속도의 공사 끝에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하지만 완성된 도시 안에, 정작 땀흘려 수고한 이들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외면당한 이들은 도시 외곽에 주저앉아, 허락 받지 않은 삶의 둥지를 틀었고, 지금은 자녀들이 나서 자라고 있다.

해가 질 무렵 사람들이 날개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도시의 경계선에서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미처 몰랐다. 니마이어의 건물 사진들만 봐온 나로서는,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이유가 그저 그의 멋진 건축물들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그것은 계획 도시의 무모함을 증언하는 기록물로 지정된 것은 아닐까. 브라질리아는 여기 이 곳 하나로 족하다는 무언의 경고와 함께 말이다.

그것은 이상과 이성을 믿던 시대, 자기 확신으로 견고했던 때의 마지막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