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원화 강세) 연내 1000원선이 깨져 세자릿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급속한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김치본드(국내발행 외화표시 채권) 발행을 확대하고, 기업들의 시설재 수입 자금에 대해 외환보유액을 대출하는 등 정책 대응에 나섰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행진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일정부분 ‘달러 퍼내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시절에 했던 것처럼 해외 증권, 채권이나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수입 확대, 내수 진작 등의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비즈는 11일 LG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등 경제연구소 거시담당 본부장들에게 환율 전망과 정부 대응 방안에 대해 물었다.
◆ "연내 1000원선 깨질 수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5원 내린 1015.7원으로 마감했다. 이틀 만에 또 연저점을 경신한 것으로 5년10개월래 최저치다. 환율은 지난 3월21일 1080.3원에서 약 2개월 반만에 6%나 절상됐다. 정부가 강하게 개입하지 않으면 올해 안에 1000원선 아래로 떨어져 6년 만에 세자릿 수 환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한완상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강하게 개입하지 않으면 연내 세자릿 수 환율이 현실화될 것"이라며 "정부가 놔두면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 쪽에서는 최대한 올해 안에는 1000원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담당 부문장은 "정부가 개입을 하더라도 환율 하락은 커다란 흐름이고 정부가 흐름을 바꿀 정도로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에 1000원선 아래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 정부, 환율 하락 막기 위해 정책적 노력 하지만 '실적 미미'
정부가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아무 일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외환시장에서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통해 환율 하락 속도를 늦췄다. 그런 노력으로 환율이 1040원대, 1020원대 등에서 보름 또는 한달 동안 머물기도 했다.
정책적으로는 김치본드를 발행하도록 유도했다. 김치본드는 국내에서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면 달러화가 국내로 유입되지만, 김치본드를 발행하면 국내에 있는 달러화를 빌려쓰는 것이기 때문에 달러화 유입을 막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 15억달러 정도가 발행됐다.
또 지난달 1일부터는 기업들의 시설재 수입에 외환보유액을 쓰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 실적은 미미하다. 김치본드도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액이 80억~90억달러, 적어도 40억달러라는 점에서는 올해 상반기에 15억달러 발행된 것은 달러 퍼내기에 역부족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김치본드가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게 있어서 신흥국 불안 요인이 있었던 1분기에 잘 발행되다가, 2분기에 해외 달러 유동성 상황이 좋아지면서 해외 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낮아졌고 그래서 발행액이 줄었다"며 "기업들의 시설재 수입을 외환보유액으로 하는 것은 은행별로 대출가능 금액을 할당해서 기업 고객들에게 마케팅 등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외증권 투자 확대 등 '달러퍼내기' 해야"
그러나 지금 정부의 대응 정도 수준으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의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는 올해 680억달러, 내년 580억달러다. 연간 60조~70조원의 돈이 달러화로 계속 들어온다. 미국이 통화정책 출구전략을 하고 있어도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유럽은 오히려 돈을 더 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체력이 튼실한 우리나라로 주식·채권 투자자금이 더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획기적으로 국내에서 '달러 퍼내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부문장은 "자본 유출, 특히 해외증권 투자 확대를 통해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투자 확대는 연기금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 차익에 대한 과세 등 국내 증권투자에 비해 차별적인 과세제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내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해 지분율 2% 이상, 시가총액 50억원 이상인 대주주를 제외하고 일반 주주에게는 과세하지 않는다. 반면 해외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5년 이상 국내 거주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20% 매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도 "국내에 들어오는 달러화로 해외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최근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해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배당금 등 투자소득으로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본부장은 또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게는 자원개발은 영원한 과제"라며 "이명박 정부 때처럼 막무가내로 투자하면 안 되겠지만 합리적으로 판단해 돈을 벌 수 있는 자원개발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외환당국이 환율 하락 속도, 변동폭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개입을 해서 미세조정하는 것에 동의한다"며 "하지만 큰 흐름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환율이 올라갈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 실장은 "규제개혁이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을 차질없이 진행해서 내수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