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착공에 들어간 '유라시아 터널'. 이 터널은 해저(海底) 106m 깊이에서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동쪽인 아시아 대륙과 서쪽 유럽 대륙을 잇는 것으로 세계 최초의 대륙 간 해저 도로(길이 3.34㎞, 위아래 2개층·각 2차로)다. SK건설은 이 터널을 TBM(터널 굴착 기계·Tunnel Boring Machine)이라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 뚫고 있다. 이진무 SK건설 현장소장은 "바다 밑에서 공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주변 지형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식 발파 공법을 사용할 수 없다"며 "19세기부터 하려 했던 터널 공사가 TBM 기술 발달 덕분에 최근에야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기계 두더지' 지나간 곳에 터널 벽까지 자동 완성
일명 '기계 두더지'로 불리는 TBM은 금속 칼날을 이용해 암반을 부수며 땅을 파고 들어가는 터널 굴착(掘鑿)용 특수 장비이다. 지금까지 터널 공사 때 주로 써온 발파(發破) 공법에 비해 소음·진동이 작고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뚫린 구멍에 터널 벽을 구성할 콘크리트 조각들을 블록을 맞추듯이 붙여 나가기 때문에 공사 속도도 3배 이상 빠르다.
TBM은 금속 칼날이 달린 머리 부분, 일명 '커터 헤드(Cutter Head)'를 회전시키면서 벽에 구멍을 뚫는다. 칼날은 철·크롬 등으로 이뤄진 특수 합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은 물론 큰 바윗덩어리도 잘게 조각내어 깨뜨릴 수 있다. 또 부서진 돌과 파낸 흙은 파이프와 펌프를 통해 터널 밖까지 자동으로 배출된다. 땅을 파는 방식이 두더지와 비슷하다면, TBM이 이동하는 방식은 애벌레가 앞으로 기어 나가는 원리와 흡사하다. 유압 잭(Hydraulic Jack·압력을 가한 기름에 의해 밀어내는 장치)으로 커터 헤드가 있는 TBM의 앞부분을 밀고, 기계의 뒷부분은 저절로 끌려오는 방식이다.
◇프로젝트 따라 맞춤 제작…제작 기간 15개월
TBM은 매번 터널을 뚫기 전 맞춤형으로 설계·제작된다. 공사 현장마다 필요한 터널의 단면 넓이와 지질 상태, 지하수 유무에 따라 작업 여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개통 예정인 유라시아 터널에는 세계 최대 TBM 제조업체인 독일 헤렌크네트(Herrenknecht)사(社)가 제작한 높이 13.7m, 길이 120m의 TBM(무게 3300t)을 사용한다. 설계부터 조립까지 15개월이 걸렸다. 유라시아 터널용 TBM은 커터 헤드 뒤쪽에 바닷물 유입을 막고 기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작업 공간을 따로 마련해 작업자들이 잠수복을 입지 않고 금속 칼날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커터 헤드가 부순 바위를 터널 외부로 옮기기 전에 압착(壓搾) 방식으로 다시 한 번 더 잘게 부수는 장치도 설치됐다.
◇TBM 시장, 2020년 50조원 규모로 성장
TBM 공법의 사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2020년까지 세계 TBM 시장 규모가 현재의 2배 수준인 5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최근엔 3개 차로를 복층으로 깔 수 있는 직경 19m짜리 대형 터널용 TBM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독자적인 TBM 제작 능력이 없다. 아직은 독일·일본·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전력·통신 케이블이 지나는 용도로 사용되는 도심의 직경 3~4m짜리 터널을 뚫을 때 사용된다.
TBM 공법은 공사 중간에 장비 교체나 설계 변경이 어렵기 때문에 사전 설계가 잘못됐을 때 공사가 지연될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예컨대 흙으로 구성된 지질을 예상했는데 단단한 바위가 나타나는 경우다. 돌발 상황이나 고장이 발생했을 때도 장비를 빼낼 수 없어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