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값 껑충, 채소값 폭락… 식탁이 온통 녹색

조선일보
  • 한경진 기자
    입력 2014.05.12 03:04

    조류독감·돼지설사병 돌고 소·돼지 감축정책에 공급 줄어 삼겹살 값, 벌써 휴가철 수준
    채소는 풍년으로 가격 바닥… 일부 배추농가 밭 갈아엎어

    서울 강남에서 13년째 한우(韓牛)·삼겹살집을 운영 중인 김모(여·58)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단체 회식이 줄줄이 취소된 데다 올 들어 계속 치솟는 고기 값 때문에 가게 운영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9일 김씨가 보여준 최근 재료 구매가격을 두 달 전과 비교한 결과, 고기 값은 오른 반면 채소 값은 내렸다.

    그가 떼 오는 안심·등심 가격은 올 3월 초에 비해 1㎏당 5만원에서 5만3000원(+6%)으로, 제비토시는 1㎏당 6만2000원에서 6만5000원(+4.8%)으로 올랐고, 삼겹살 가격은 1㎏당 1만4500원에서 1만6500원으로 13.8%나 뛰었다. 반면 양파는 15㎏에 1만9000원에서 1만5000원(-21%)으로 내렸고 무(-18%)와 배추(-63%)도 많이 떨어졌다. 김씨는 "구이용 양파와 양파 절임, 깍두기 반찬 등은 손님들에게 원 없이 제공할 수 있지만 고기 값이 너무 올랐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不景氣)에 가격을 올릴 수도 없어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돼지설사병·조류독감… 肉類는 高空 행진

    본격 나들이·바캉스 시즌을 앞두고 삼겹살 등의 수요는 늘고 있는데, 고기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돼지와 닭, 한우 등 거의 모든 고기 품목이 일제히 오름세다.

    따뜻한 날씨로 채소 출하량이 늘어나면서 채소 값은 폭락한 반면, 돼지유행설사병(PED), 조류인플루엔자, 정부감축정책 등으로 고기 값은 치솟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채소 코너에 지난해보다 각각 7, 31% 이상 가격이 하락한 시금치와 양배추가 진열돼 있다(왼쪽). 11일 서울의 백화점 정육 코너에서 100g에 2200원을 기록해 호주산 소갈비 값을 뛰어넘은 삼겹살 모습(오른쪽).
    따뜻한 날씨로 채소 출하량이 늘어나면서 채소 값은 폭락한 반면, 돼지유행설사병(PED), 조류인플루엔자, 정부감축정책 등으로 고기 값은 치솟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채소 코너에 지난해보다 각각 7, 31% 이상 가격이 하락한 시금치와 양배추가 진열돼 있다(왼쪽). 11일 서울의 백화점 정육 코너에서 100g에 2200원을 기록해 호주산 소갈비 값을 뛰어넘은 삼겹살 모습(오른쪽). /김연정 객원기자·뉴시스
    삼겹살의 경우, 올 4월 100g당 1929원으로 이미 지난해 휴가철 가격(1874원)을 훌쩍 넘겼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돈육 대표가격(도매시장 평균가격)은 9일 4907원(1㎏)으로 작년 동기 대비 37.4% 정도 비싼 것으로 분석됐다. 삼겹살 가격은 올여름 역대 사상 최고가를 찍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삼겹살 가격은 일년 중 휴가철에 가장 비싸다.

    이런 현상은 작년 11월 발생한 돼지유행설사병(PED)으로 전체 사육 돼지 숫자(970만마리·3월 기준)가 4% 정도 줄어 공급량이 줄어든 탓이 크다. 특히 PED로 4개월령(齡) 미만 새끼돼지까지 4.4% 정도 감소해 올해 돼지 공급량은 늘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다 '설상가상' 격으로 정부가 지난해 돼지 가격 안정을 위해 '어미돼지 10% 감축 정책'을 실시하는 바람에 출산이 가능한 모돈(母豚) 숫자(91만 마리·올 3월 기준)가 작년 동기(同期) 대비 6.5% 정도 감소한 것도 악재이다.

    채소와 고기의 가격 변동 그래프
    올해 초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닭고기 값은 9일 기준 1kg당 6333원으로 작년보다 18% 넘게 올랐다. 지난달 닭고기 총 공급량(7504마리)은 작년보다 5.6% 줄었지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따른 '치맥(치킨과 맥주)' 열풍, 때 이른 더위로 인한 삼계탕 인기, 다음 달 월드컵 특수(特需) 등으로 닭 수요는 계속 증가할 조짐이다.

    돼지와 닭고기 값이 치솟자, 한우 값도 덩달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한 달(9일 기준) 동안 한우 전국 평균가격은 1만3605원(1㎏)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1% 올랐다. 정부가 2년 넘게 실시해 온 암소 감축 정책이 올 들어 효과를 보기 시작한 것도 원인이다. 한·육우 사육 두수(頭數)는 지난해보다 20만마리 가까이 줄었다.

    풍년의 역설로 채소 값은 폭락

    이에 반해 채소는 따뜻한 겨울로 작황(作況)이 어느 때보다 좋아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 가격이 줄줄이 내려가고 있다. 충남 예산과 전남 나주의 비닐하우스 150동(棟)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J농산의 신모 대표는 "배추 도매가격이 작년보다 70%나 떨어져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며 "예산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이웃은 최근에도 배추 4000포기를 트랙터로 밀어버렸고 1만4000포기를 추가로 갈아엎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봄 채소가 본격 출하(出荷)되는 것도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5월 들어서 배추와 양파 출하량이 작년보다 22%, 무 출하량은 20% 정도 각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서울 가락시장의 9일 배추(상품·1포기) 도매가는 2019원으로 작년 같은 달 평균 가격보다 33.3% 정도 떨어졌고, 무(상품·1포기)는 1193원으로 32.9% 하락했다. 양파는 1㎏당 1532원으로 무려 57% 떨어졌다.

    이마트 문주석 돈육 바이어는 "아직 고기 수요가 줄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 고기 구매량도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식탁에서 고기는 사라지고 채소류만 등장하는 상황도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가격이 크게 떨어진 무·배추·양파·당근 같은 채소 구매량은 이달 들어 조금씩 늘고 있다.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