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낮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아파트 단지 1층에 늘어선 10여개의 부동산 중개업소 유리창에는'급매(急賣), 즉시 입주 가능' '전(全) 주택형 보유' 등 아파트 매물 목록을 적은 A4용지들이 붙어 있었다. 한솔동 H부동산중개소 직원은 "전세금을 2~3개월 전보다 8000만원이나 낮춰 불러도 세입자를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때 '분양 불패(不敗)'로 불리던 세종시의 부동산 시장 열기가 주춤하고 있다. 올 들어 아파트 전세금이 급락하고 매매 가격은 약세가 됐다. 세종시 아파트 전세금은 올 들어 평균 6.1% 떨어졌고, 올 3월 아파트 매매 가격은 2013년 이후 처음 하락(-0.03%·'부동산114' 조사)했다.
◇전세금, 석 달 새 7000만원 '뚝'
세종시는 2012년(21.6%)과 지난해(12.5%)에 전국에서 전세금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딴 판이다. 신규 입주 아파트는 물론 기존 아파트 전세금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정부 세종청사와 1.5㎞ 정도 떨어진 세종시 종촌동 '한신 리버파크'(955가구)는 입주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전체의 절반 가까운 400여가구가 전·월세 매물로 나와 있다. 종촌동 S부동산공인 사장은 "일단 전세를 놨다가 2년 후 입주하겠다는 집주인이 많아 전세금이 자꾸 떨어진다"고 말했다.
2011년 말 세종시에서 처음 입주한 한솔동 '첫마을 퍼스트프라임' 1·3단지(전용면적 84㎡)는 올해 초 2억2000만원대였던 전세금이 최근 1억5000만원대로 하락했다.
우후죽순 들어선 원룸 주택의 전세금도 내림세가 뚜렷하다. 세종청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금남·장기면 등지에는 '나 홀로 공무원족(族)'을 겨냥한 지상 4~5층짜리 원룸 주택 50여채가 들어서 있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젠 원룸도 넘쳐나 지난해 40만~50만원 하던 원룸 월세가 반 토막 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 주택 매매 가격과 아파트 분양권에 붙었던 웃돈(프리미엄)도 하락하는 중이다. 작년 12월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린 직후 3억원에 거래됐던 '호반 베르디움'(84㎡) 분양권은 요즘 2억8000만원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세종시 푸르지오'(84㎡)는 지난해 3000만원까지 붙었던 웃돈이 10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종촌동 A부동산중개소 직원은 "초기에는 청약 탈락자들이 수천만원씩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샀지만 요즘엔 입주 직전에 서너 채 거래되는 정도"라며 "올가을 아파트 입주량이 더 늘면 집값은 추가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보다 입주 물량 너무 많아
세종시 주택 시장이 식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올 들어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2011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약 1만가구가 입주했다. 하지만 올해 입주량은 이보다 1.5배 정도 많은 1만4681가구. 내년엔 1만6000가구로 더 늘어난다.
대형 마트·학교 등 생활 편의 시설이 부족해 세종시로 이사하는 공무원이 예상보다 적은 것도 원인이다. 작년 말까지 세종시로 이전한 33개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8200여명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2200여명은 서울·수도권에서 출퇴근한다. 세종시에서 생활하는 공무원 중에서도 상당수는 가족 없이 혼자 원룸 등에서 지낸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 식당이나 카페 같은 것들이 거의 없는 데다 대형마트나 종합병원을 가려면 차로 20분 걸리는 대전까지 나가야 하는 등 생활환경이 불편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세종시 주택 시장이 당분간 약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올 연말에 국세청·소방방재청 등 6개 기관(직원 2100여명)이 추가 이주하지만 신규 입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올해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장성수 '주거복지연대' 전문위원은 "세종시 주택 시장의 근본 문제는 공무원 이주 숫자보다 공급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며 "세종시가 자족(自足) 기능을 빨리 갖춰야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