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금리 대출 늘리려다, 서민 돈줄 막을라

입력 2014.04.24 03:01

금융당국 "가계대출 개선" 압박
강력 반발하는 시중은행들… 전세대출 줄이기 등 편법 쓸 가능성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대출 비율을 높이라고 계속 압박하면, (비율을 맞추기 위해) 전세 대출이나 중도금 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중은행 지점에서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이모(38) 차장은 불만을 쏟아냈다. 이달 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가계 대출의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주택 관련 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데 대한 불만이다. 이 차장은 "요즘 고정금리 대출보다 변동금리 대출 금리가 워낙 저렴해 모두 변동금리 대출만 찾는데 무슨 수로 고정금리 대출을 늘리느냐"고 반문했다.

고정금리 대출 확대 정책을 둘러싸고 금융당국과 은행 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문제는 둘 간에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2017년까지 고정금리 대출 40%까지 확대"

금융당국은 2011년부터 주택 관련 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 효과는 제법 있다. 2011년 주택담보 대출 중 3.1%에 불과했던 고정금리 대출이 2012년엔 14.2%로 높아졌다. 당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급증한 것은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고정금리 대출 상품인 '적격대출'의 금리가 연 4.7%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은행권 변동금리 대출 상품(당시 평균 5.1%)보다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금리 역전 현상 때문에 고정금리 대출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 금융당국의 고정금리 확대 대상인 대출 현황.
하지만 작년 1분기 이후 다시 변동금리 대출이 더 싸지면서 고정금리 대출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이런 와중에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대출 비율을 2017년까지 40%까지 높이겠다는 무리한 목표를 세워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변동금리 대출은 금리가 오르면 곧바로 가계 이자 부담이 늘기 때문에 장기 고정금리 대출 확대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무리한 목표다.

주택담보 대출의 경우 현재 변동금리 상품은 은행에서 각종 우대금리를 적용하면 연 3.2~3.5% 수준까지 떨어진다. 반면, 10년 이상 고정금리 대출 상품 금리는 4.1~4.3% 수준이라서 고정금리 대출을 찾는 소비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A 은행 가계 대출 담당자는 "현재 상황에선 고정금리 대출을 금융당국 목표처럼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중도금·전세 대출은 고정금리 대출 비율 산정 때 빼달라"

현재 금융당국은 일반 주택담보대출, 중도금·이주비 대출, 전세 대출을 합친 금액 중 5년 이상 장기 고정금리로 취급한 대출 비중을 '고정금리 대출 비율'로 산정하고 있다.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받는 중도금 대출(대출 기간 1~3년)과 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해 3~4년 정도 전셋집을 구하는 용도로 받는 이주비 대출, 전세 대출(2년)은 대출 기간 자체가 짧아 사실상 모두 변동금리 대출이다.

은행들은 중도금·이주비 대출과 전세 대출을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산출할 때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중도금·이주비·전세 대출은 66조5000억원으로 주택 관련 대출의 18.7%를 차지한다.

이런 대출을 제외하면 현재 고정금리 대출 비중도 15.9%에서 19% 수준으로 훌쩍 올라간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과거에도 중도금·이주비·전세 대출을 포함해 대출 비중을 산출했는데, 은행들이 갑자기 계산법을 바꿔 달라는 것은 고정금리 대출을 늘리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대하고 있다.

◇은행에서 고의로 대출 줄이면 소비자 피해 발생할 수도

은행들은 고정금리 대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지점 경영성과 평가 때는 물론 인사고과 점수까지 반영하고 있다. 그러자 은행 일부 지점에선 중도금·이주비·전세 대출을 웬만하면 취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맞추려는 ‘편법’을 쓰려 하고 있다. 중도금·전세 대출에 대해선 우대금리를 적용해 주지 않는 방법으로 대출 금리를 올리고, 저렴한 대출 상품을 숨기는 등 은행들이 대출 ‘디마케팅(Demarketing)’에 나서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갈 우려가 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2년 전 고정금리 대출의 금리가 변동보다 저렴하던 시기에 세운 목표를 시장 상황이 뒤바뀐 뒤에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중도금·이주비·전세 대출은 고정금리 대출 비율을 산정할 때 제외해 주고, 대신 고정금리 대출 목표치를 일정 수준 높여 타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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