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LG유플러스·SK텔레콤·KT가 차례로 내놓은 LTE(4세대 이동통신)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10일간 약 20만명이 가입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월 6만2000원(2년 약정 기준) 정도만 내면 '요금 폭탄' 걱정 없이 무선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휴대폰 간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도 무제한 사용 가능하다.

'무제한'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는 건 통신 업계만이 아니다. 유료TV·신용카드·패밀리레스토랑 등도 고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무제한' 상품·서비스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업계 곳곳에 퍼진 무제한 마케팅

유료TV 업계는 최근 '무제한 전략'으로 가입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KT의 '올레TV'는 지난달 31일 월 1만4900원을 내면 한 달간 영화나 인기 미국 드라마 등을 제한 없이 볼 수 있는 '프라임 무비팩'을 내놨다. 극장에서 영화 2편 볼 돈이면 집에서 편안하게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SK브로드밴드는 월 1만3000원에 지상파TV 방송을 무제한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월정액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TV 다시보기'는 보통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한 편당 1000원(고화질 기준)이기 때문에 1주일에 3~4편 이상 보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10만~30만원짜리 e북(전자책) 단말기를 사면 디지털로 제작한 책·잡지 등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신용카드 업계도 '무제한 전략'을 내놓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할인 한도나 포인트 적립에 제한을 두지 않는 '챕터2 시리즈'를 출시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대부분의 카드 상품이 고객 혜택에 월간 한도를 두고 있는데 이 카드는 월 50만원 이상 결제하면 혜택을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레스토랑은 1인당 8000~1만원을 내면 맥주나 와인을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프로모션을 자주 진행한다. 한 사람당 3만~4만원을 내면 스테이크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다.

무제한 마케팅에 숨은 기업 전략

기업은 무제한 마케팅을 통해 사람들에게 "당신이 낸 돈으로 우리 배를 불리려는 게 아니라 우리의 곳간을 털어 당신의 배를 불려주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고객 감사', '고객 사랑 보답' 등의 문구를 붙이는 이유도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고객에게 막 퍼줘도 기업에 남는 것이 있을까. 이승윤 건국대 교수(경영학)는 "제한을 없앴다고 하면 소비자들은 '뭔가를 크게 베풀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하지만 기업은 이미 모든 데이터 조사를 통해 실리(實利)를 따져보고, 어떤 형태로든 손해를 보지 않는 '안전장치'를 해놓는다"고 말했다.

유료TV·e북 업계의 '무제한 콘텐츠' 서비스에도 안전장치가 있다. 언뜻 보면 1편에 최대 1만원까지 하는 '극장 동시 상영 영화'를 TV로 2편만 봐도 이익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제한 시청이 가능한 영화 목록에는 상대적으로 요금이 비싼 최신 인기 영화가 빠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e북도 최신 서적은 무제한 서비스에서 제외된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은 무제한 서비스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통신사들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평소 4만~5만원대 요금을 내는 사람을 6만원대 요금제로 끌어들이고, 데이터 걱정 없이 유료 콘텐츠를 많이 보도록 유도한다. 한 건 한 건 결제할 경우보다 고가의 월 정액제 고객을 많이 확보하면 회사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올리는 장점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제한은 무조건 싸고 좋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한 상품·서비스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사람들이 무제한 음식을 제공하는 뷔페 식당에서 욕심을 부리다가 배탈이 날 때도 있고, 식사 후에 뭘 먹었는지 모르고 후회하는 적이 종종 있다"며 "무제한에 현혹되지 말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을 가려내서 소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