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처음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지 10년이 됐다. 한국은 지난 2004년 4월 1일 칠레와의 FTA가 발효되면서 세계 통상 무대에 처음 데뷔했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통상 대국으로 거듭났다. 한국은 현재 46개국가와 9개 FTA를 발효 중이고, FTA 체결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43조7000억원으로 전 세계의 62%에 이른다.
이 같은 성과는 한국의 첫 FTA였던 한·칠레 FTA가 꾸준한 성과를 거둔 덕분이다. 한·칠레 FTA에서 삐걱거렸다면 그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아세안 같은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추진도 힘들었을 것이다.
◆ 한·칠레 교역규모 10년 사이 4.5배 늘어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과 칠레의 교역 규모는 71억달러였다. FTA 발효 전인 2003년(16억달러)보다 4.5배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세계 교역규모는 2.9배 증가했다. 칠레와 FTA를 체결하기 전에 교역 규모가 감소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FTA 효과가 확실히 나타난 셈이다.
한국의 대(對)칠레 수출은 같은 기간에 5억달러에서 25억달러로 5배 가까이 늘었고, 수입은 11억달러에서 47억달러로 4.4배 증가했다. FTA 발효 이후 상대국과의 교역량 변화 추이를 보면 칠레와의 FTA는 다른 FTA보다 효과가 탁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도와 EU를 제외한 모든 FTA가 대 세계 수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수출이 늘어났고, 그 중에서도 대 칠레 수출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FTA 체결의 목적이 무역수지 확대가 아니라 교역 확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 여겨 볼만한 결과”라고 말했다.
FTA 발효 이후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품목은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 칠레 수출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은 지난 10년 사이 8배가 증가했다.
◆ 포도농가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한·칠레 FTA는 당초 예상과 달리 포도농가를 비롯한 국내 농축산업계에 끼친 피해도 크지 않았다. 국내 포도농가의 1000㎡당 연간 소득은 2003년에 225만원에서 2012년에는 435만원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재배면적이 줄기는 했지만, FTA 전부터 영세 농가의 사업 철수로 재배면적은 꾸준히 감소하던 추세였기 때문에 FTA 영향으로 보기 힘들다.
물론 칠레산 포도의 수입은 급증했다. 칠레산 포도 수입은 중량기준으로 2003년에 9000톤에서 2013년에 4만7000톤으로 늘었고, 금액기준으로도 같은기간 1400만달러에서 1억4400만달러로 늘었다. 하지만 칠레산 포도는 국내산 포도가 수확되지 않는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수입되고 있어 국내 농가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고 있다. 칠레산 포도는 국내산 포도 비수기인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만 특혜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특정 시기에만 특혜관세가 적용되는 계절관세 덕분에 칠레산 포도는 대부분 1월부터 5월 사이에만 들어오고 있다”며 “국내산 포도 수확기에 수입되는 물량은 전체 칠레산 포도의 3%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포도와 마찬가지로 피해가 예상됐던 돼지고기도 특별한 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칠레 FTA 이후 칠레산 돼지고기 수입은 중량기준으로 2배, 금액기준으로 3.4배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국의 대 세계 돼지고기 수입이 중량기준 2.4배, 금액기준 4.5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오히려 적은 규모다.
다만 FTA 발효 이후 한국의 대 칠레 무역수지 적자는 확대됐다. 2003년에 5억달러였던 무역수지 적자는 2013년에 22억달러로 늘었다. 한국은 칠레에서 동제품, 동광을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는데, 구리 가격이 FTA 발효 이후 4배 증가하면서 동 가격도 뛰어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 한·칠레 FTA 이제부터 진짜다
FTA 발효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11년 이후 정체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부터 한·칠레 FTA 효과가 다시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한·칠레 FTA에서 관세를 10년 이후 철폐하기로 한 품목들은 관세가 크게 낮아지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한국측은 돼지고기, 키위 등 농림수산물 473개의 관세를 추가로 철폐했고, 칠레 측은 청소기, 축전지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 1445개 품목의 관세가 추가로 철폐했다. 예컨대 한국은 삼겹살과 키위에 각각 붙는 2.4%, 4.1%의 관세를 철폐했다. 칠레는 3%인 승용차와 산업용 타이어 관세를 2.25%로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