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유채꽃이 활짝 핀 제주도 서귀포시의 산방산 근처 도로에 하늘색 경차(輕車)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상상 이상인데요. 스포츠카 못지않게 팍 튀어나가네요." 한국GM의 전기차(電氣車) '스파크 EV'의 운전대를 잡은 제주도민 김정훈(39)씨의 말이다.
전기차 구입을 고민하고 있다는 김씨는 "제주도는 보조금 혜택이 좋은 데다, 충전소도 많아 아주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직접 타보니 출발할 때 '쉬잉'하고 튀어나가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는 짧은 주행거리·부족한 인프라 등으로 '시기상조'라는 얘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해안가를 따라가는 일주 도로 길이가 180~200㎞ 남짓해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가 현재 130~150㎞ 수준인 전기차를 몰기에 천혜(天惠)의 조건을 갖췄다. 언덕이 많으니 내리막길에서 탄력주행으로 배터리를 재충전할 수 있는 '회생제동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좋다.
제주도는 상용화 초기 단계인 전기차의 '테스트베드(시험무대)'인 동시에 최적(最適)의 전기차 상용(常用) 생활권인 셈이다.
◇초반 가속력 훌륭… 충전기 찾느라 진땀
이런 제주도에서 기자는 14일 낮 '스파크 EV'를 타고 서귀포시와 중문관광단지 주변 등 90㎞를 다녀봤다. '스파크 EV'는 작년 8월 출시된 전기차로 올 1월까지 미국·캐나다·한국에서 1331대가 팔렸다. 3.5L급 가솔린 엔진을 단 스포츠카 포르셰 '박스터'보다 초반 가속(加速) 능력이 뛰어나 달리기 시합을 하면 초반 40~50m는 박스터를 앞선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컴퓨터 전원을 켠 듯한 느낌만 들었을 뿐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속 페달을 밟자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배터리를 아끼지 않고 힘을 최대로 쓰는 '스포츠' 모드로 운전하자 빙판을 미끄러져 나가듯 빨리 질주했다. 다만 계기판에 배터리가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여 다시 일반 모드로 전환했다.
3시간을 타고 돌아다녔더니 남은 주행 가능 거리는 31㎞. 급속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는 서귀포시의 한 대형마트로 갔으나 휴일이라 문을 닫아 간신히 6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로 갔다.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가 제공한 인증카드를 대고 20여분 만에 충전을 할 수 있었다.
◇全 세계 전기차가 몰린 국제전기차엑스포
이튿날 15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전기차엑스포에는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각축 열기가 뜨거웠다. 이달 21일까지 열리는 행사에 '스파크 EV'는 물론 'SM3 Z.E'(르노삼성), '리프'(닛산), '쏘울·레이'(기아차) 등이 총출동했다. BMW의 전기차 i3도 공개됐다. 15·16일 이틀간 3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아왔다.
주부 김미경(41)씨는 "가족들과 함께 쏘울·레이·리프를 모두 타 봤는데 트렁크 용량이 작지만 일반 엔진 차에 비해 조용하고 힘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전기트럭인 파워프라자의 '피스(Peace)'를 시승해 본 농부 정재환(52)씨는 "장거리 운행은 불가능해도 트럭 소음이 전혀 안 나서 좋다"고 했다.
충전 걱정을 하는 고객을 겨냥해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측은 "가까운 곳에 설치돼 있는 충전기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서비스를 개발해 조만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 초부터 제주 관광객에게 전기차 렌터카 서비스를 제공하는 SK네트웍스는 "현재 10대의 전기차를 서비스하고 있는데, 매주 15건 정도 예약이 들어온다"며 "주행 가능거리가 짧고 충전 방식이 낯설어도 렌털요금 1만7500원 이외에 기름값이 전혀 들지 않아 호응이 좋다"고 밝혔다.
제주도 당국은 '카본 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무탄소 섬) 2030'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37만대의 차량을 전기차로 모두 바꾸겠다는 목표이다. 이 청사진이 실현되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전기차의 성지(聖地)'로 탈바꿈하게 된다.
전기차는 전기모터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엔진 소음이나 매연이 없다. 이를 위해 전기차 한 대당 2300만원의 보조금(정부 1500만원·제주도 800만원) 혜택도 준다. 이미 전국 각지에 있는 전기차 1881대 가운데 360대가 제주도에 있어 총량은 서울(688대)에 뒤져도 비율로는 전국 1등이다. 올해 환경부가 전국에 보급하기로 한 전기차 1150대 가운데 500대가 제주도 몫이다.
김대환 제주 국제 전기차 엑스포 조직위원장은 "제주도 내에는 전기차 충전기도 497개가 설치돼 있어 단위면적으로 치면 3.72㎢당 1개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국내 완성차뿐 아니라 독일 BMW, 일본 닛산 등에서도 자사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만큼 제주도는 '글로벌 전기차 허브(hub)'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