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업체 E1이 동계 올림픽을 겨냥해 선보인 김연아 선수 광고를 중단하기로 했다.
E1은 지난 15~16일 이틀에 걸쳐 ‘너는 대한민국이다’편 방송광고를 새롭게 선보였다. 20일 새벽부터 열리는 피겨 경기를 앞두고 나온 이 광고는 김연아 선수가 빙판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과 시상대 위에서 어깨에 태극기를 두른 장면 등을 담았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해 ‘너는 4분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등 직설적인 카피를 던지며 주목을 받았다.
◆‘지나친 애국심’ 메시지에 시청자들 외면
올림픽 특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시점에 광고가 갑작스럽게 중단된 배경은 광고가 때 아닌 ‘억지 애국심 호소’ 논란을 일으키며 누리꾼 사이에서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논란의 정점은 광고 카피였다. 누리꾼들은 “전형적인 전체주의 사고방식이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선수 개인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이를 강요하는 듯한 점이 보기 불편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광고가 첫 선을 보인 E1 오렌지카드 유투브 계정에는 ‘애국심에 호소해 김연아 선수에게 메달 부담을 지우고 있다’, ‘국가 대표 선수에 대한 나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와 닿지 않는 광고다’는 부정적인 댓글이 주를 이뤘다.
전문가들도 E1 광고를 두고 국민 정서와 상황에 부적절한 광고라고 지적했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대형 스포츠 행사마다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애국심 호소형 광고였지만, 국민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역효과가 난 사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젊은층 사이에서 최근 취업난, 결혼난 등 경제적 어려움이 대두되면서 ‘국가가 해준 게 뭐냐’는 회의감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듯한 광고 메시지가 제대로 통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말했다.
전승우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련된 현대 소비자들 입맛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수준을 지나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는 상황에서 개인 선수를 국가와 연결한 마케팅 전략은 시대착오적이다”고 말했다.
2012년 5월부터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E1은 최근 브랜드가치 평가 회사인 브랜드스탁의 평가에서 처음으로 정유·LPG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모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던 E1은 광고 논란으로 어렵게 쌓은 기업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판단, 19일부터 해당 광고를 내리고 지난해 하반기에 출시했던 광고로 대체했다.
E1 측은 “김연아 선수를 격려하려고 만든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반응이 나와 당혹스럽다”며 “김연아 선수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광고를 중지하고 작년에 만든 광고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E1은 올림픽 기간에 김연아 선수가 출연하는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IOC의 공식후원사인 삼성전자와 IOC와 이미지 스폰서십을 맺은 E1, 동서식품 등 소수 기업만 김연아 선수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의 상업적 이용을 막는다는 취지로, 경기 기간 중 국가대표 선수가 출연한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의 이상화 선수 광고, 프로스펙스의 김연아 선수 광고가 최근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것도 이 같은 이유다.
E1 관계자는 “올림픽 경기가 끝난 이후 김연아 선수에게 격려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새로운 광고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집행 날짜는 내부 협의 중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