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밝았다.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새로운 활력을 한국 경제는 기다린다.
이미 국내 시장이고 세계시장이고 포화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상황에서도 변혁의 주인공은 있게 마련이고 낡은 경제를 대신해 새로운 경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누가 그런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독특한 아이디어나 남들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며 1위의 자리를 거머쥔 코스닥 스몰캡(중·소형주)의 '거인' 경영자들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1958년. 박봉준 대륙제관 대표가 태어난 해이자 대륙제관이 설립된 해다. 함경도 함흥 출신의 아버지 박창호(92) 전 회장이 한국전쟁후 1958년 미국부대에서 나온 캔을 재활용해 각종 제품을 만들면서 태동한 회사가 바로 대륙제관이다. 안 터지는 부탄가스 ‘맥스’로 소위 대박을 친 이 회사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2000억원이다. 어느덧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금속 캔이나 포장용기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란 박 대표는 대학도 자연스럽게 공과대학을 택했다. 그는 “법대나 의대는 생각지도 못했고 공대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경영보다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박 대표는 한양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경영학을 배우는 것이 필요했다. 학부 졸업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에서 MBA를 다시 배운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 박 대표가 아버지 회사에 입사한 해다. 박 대표의 꿈은 아버지보다 이름을 날리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업을 물려받는게 의미있는 일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는 “아버지가 이루신걸 크게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회사에 들어가 말단 직원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6년. 박 대표가 합류한 후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이 해 회사에는 큰 위기가 닥쳤다. 2월 14일 공교롭게도 발렌타인데이인 이날 충남 아산 생산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부탄가스 생산라인과 창고에 불이 붙으며 총 800억원대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회사 직원들은 이날을 ‘불난데이’라고 부른다. 그는 “연쇄폭발이 일어나며 창고에 쌓인 제품까지 모두 다 타버려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15억원을 안 터지는 부탄가스 개발에 투자했다. 그렇게 개발된 제품이 바로 맥스다. 가스통이 가열되면 안에 있는 가스가 팽창하는데, 이때 용기의 머리부분에 숨어있던 12개의 공기구멍이 열리며 가스를 밖으로 내보낸다. 라이터가 불을 내듯이 불길이 커질 수는 있지만 용기가 터지는 폭발로는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이 3중 폭발방지 고압용기(CRV) 기술로 특허도 따냈다. 지금은 세계 60개국에 수출하면서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사실 부탄가스가 터지는 대형 사고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대륙제관에 닥친 ‘불난데이’ 또한 산업계 전체로 보면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물론, 수많은 부탄가스 이용자들은 은연 중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안터지는 부탄가스 맥스는 이 같은 심리 덕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500억~600억원을 오르내리던 매출은 2010년대 들어 맥스 등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늘었다.
박 대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술’이다. 그는 “기술이 없으면 사업을 키울 수가 없다”며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묻고, 배우고,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함흥에서 홀로 내려와 자수성가하신 아버지가 강조한 것도 기술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 직원 350명 가운데 연구 관련 인력이 45명에 달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술을 중시하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회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신뢰’를 꼽았다. 그는 “공장 화재로 거래처에 납품을 할 수 없게되자 난리가 났었다”며 “거래처가 필요한 제품을 구할 수 있도록 경쟁사들을 소개시켜줬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힘겹게 거래를 시작한 외국 업체였지만 거래처를 빼앗기더라도 그들이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라고 믿었다”며 “가슴이 쓰리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신뢰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신뢰의 힘은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을 다시 짓고 사업을 재개했을 때 외국 거래처들이 대륙제관과 계약을 하겠다고 돌아왔다.
2013년. 대륙제관은 이제 종합 화학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 목록을 보면 무릎을 칠 소비자가 많다. 방충제인 에프킬라, 자동차 윤활유 불스원샷, 타이어에 뿌리는 스프레이 체인, 바르는 썬크림 대신 내놓은 썬스프레이까지 모두 대륙제관에서 만든다. 이 제품들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기업에 납품한다. 판매를 제외하고는 용기부터 내용물까지 모두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이다. 화장품은 원료를 받아서 에어졸 제품으로 만들어 납품하기도 한다. 박 대표는 “시장이 포화됐다고 해서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만의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상품에 적용한다면 얼마든지 새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