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새로운 지식 덕분에, 전 세계 70억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니 신나지 않나요.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신의 비밀을 푸는 과학의 더 큰 기쁨을 한국 의대생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론 치에하노베르(Ciechanover·66·사진) 교수는 27일 서울대 의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도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군대와 병원에서 총 6년간 환자를 진료했던 임상 의사 출신"이라며 "의대 졸업생은 환자와 질병에 대한 이해가 높고 시야가 넓어 기초과학 연구자로 매우 적합하다"고 말했다.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유비퀴틴(ubiquitin·다른 단백질과 결합해 분해를 촉진하는 신호 물질)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되는 원리를 밝힌 공로로 200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의 연구는 연 매출 3조원대의 블록버스터 신약인 골수종 치료제 벨케이드 등 다수의 의약품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2005년 이스라엘의 한 뉴스 웹 사이트가 존경받는 이스라엘인 200명을 뽑는 투표를 진행했는데,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현존 인물 중 31번째를 차지했다.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2004년 노벨 화학상을 함께 받은 아브람 헤르슈코(76) 교수와 2년간 1년에 최소 3개월 이상 서울대 의대에 체류하며 연구와 강의를 병행할 예정이다. 20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같은 대학 다니엘 셰흐트만(72) 교수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3명 모두 테크니온 공대 교수 출신이다.
서울대가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교수로 초빙한 것은 2008년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선정이 계기가 됐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우리나라가 바이오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기초과학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서울대 의대가 한해 2300여편의 SCI(국제논문인용색인)급 연구 논문을 내놓고 있지만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 최상위 저널 논문은 드물다"고 말했다. 강 학장은 "교수들이 노벨상 수상자와 협력하면 질 높은 연구 결과가 나오고 학교와 국가의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생들도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서울대 의대에는 상위 0.1% 이내의 최고 엘리트가 몰리지만 대부분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만 진출하고 있다. 강 학장은 "국내 최고 인재들이 압구정, 청담동의 병원장이 아닌 세계 의학 연구계를 이끄는 연구자가 돼 국내외 의료 산업을 이끌길 바란다"고 말했다.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의대 출신 기초과학 연구자가 많이 나오려면 의대의 석박사(MD·PHD) 통합 과정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세계적 석학을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학생들에게 국제회의와 학회 참석 등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의대는 '단백질 대사 연구센터'를 설립해 치에하노베르 교수를 소장으로 임명할 계획이다. 치에하노베르 교수 초빙에 큰 역할을 한 권용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치에하노베르 교수처럼 전 세계 과학자들과 왕성하게 교류하는 석학이 연구센터 소장으로 있으면 우리가 이 분야 세계 연구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연구하다가 2010년 서울대의 차세대 우수 학자 초빙 사업을 통해 귀국했다.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한국은 이스라엘과 교육 열기 등 공통점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훌륭한 인재가 많은 한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아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노벨상 수상자 초빙 사업 기간이 예산 문제로 2년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강대희 학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하면 서울대 의대뿐만 아니라, 전국 대학 등에서도 많은 학생이 강의를 듣고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며 "해외 공동 연구 등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정부의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