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론을 발명해 세계 의류산업을 뒤바꾼 듀폰은 화학회사가 아닌 농업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듀폰 매출의 3분의 1이 농업 부문에서 나오고, 전체 R&D(연구개발) 비용의 절반을 종자개발 등 농업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다국적 종자 기업 몬산토는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1조6000억원을 썼다.

듀폰·몬산토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농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이 크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곡물회사 미국의 카길은 지난해 1330억달러(14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곡물을 키우고 유통해 대한민국 명목 GDP(국내총생산·2012년 기준)의 11.4%를 벌어들이는 것이다. 카길이 고용한 인원은 14만2000명에 이른다.

농업의 산업화·기업화는 식량 주권과도 연결된다. '농업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종자(種子)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종자 산업을 국가 신동력 산업으로 인식해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인이 즐기는 매운맛의 대명사인 청양고추는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때 특허가 몬산토에 넘어간 탓에 외국 기업에 로열티를 내고 먹는 음식이 돼버렸다. 작년 9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우리나라가 향후 10년간 종자 사용 로열티로 지급할 금액이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농업 환경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많은 농민이 과학적 영농법과 정확한 수요 예측, 효율적인 마케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농민은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정서가 국내 농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농어민과 상생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시행하는 기업들도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인식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만 식량 주권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