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증권사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수익성 악화로 경영부실 위기에 놓인 증권사들에 대한 고강도의 구조조정이 조만간 추진될 것으로 보여 증권업계가 ‘새판 짜기’에 들어갈지 주목된다.

증권가 안팎에서는 그동안 국내 증시 규모에 비해 증권사 수가 너무 많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증권사간 인수합병(M&A)의 시너지효과가 크지 않아 인력감축 등의 증권사 내부적인 구조조정에 그치는게 대부분이었다.

◆ 금융당국, 증권사 구조조정 전방위 압박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금융투자협회 창립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경영 부실 증권사는 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며 “증권회사 M&A 촉진을 위해 M&A를 추진하는 회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62개에 달하는 증권사의 M&A 촉진을 위해 M&A에 관심 있는 회사에는 혜택을 주고 경영부실 증권사에 대해서는 한층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앞서 신 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작은 증권사들은 시장에서 M&A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조조정 촉진 정책을 늦어도 연말까지 내놓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당국이 지난 2007년 증권사 신규 진입을 허용하면서 2008년 40개였던 국내 증권사 수는 2009년 47개, 2010년 49개, 2011년 50개, 지난해 51개에서 올해 현재 62개로 급증했다.

금융위원회는 증권사들의 콜시장(금융회사 간 초단기 자금조달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단기자금시장의 만기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2015년부터 은행만 콜시장에 참여시키는 내용도 전날 발표했다. 중소형 증권사 구조조정을 위한 포석인 것이다. 다만 증권사 중 국고채 전문 딜러와 한국은행 공개시장조작대상 증권사(총 16개사)는 참여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따라 중소형 증권사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면서 경영난이 심각해져 증권사 구조조정이 촉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낮은 금리로 콜 자금을 끌어올 수 없게 되면서 중소형 증권사의 자금조달비용이 올라가고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증권사 구조조정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정작 당사자는 구조조정에 소극적

증권사간 구조조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IB)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대형화가 필수고 이를 위해서는 M&A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증권사들의 자율적인 M&A는 이뤄지지 않았다.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증권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굳이 없는 살림에 돈을 꿔서 M&A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수에 나설 만한 증권사도 매물로 나오는 증권사도 많지 않았던게 현실이다.

실제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나온 우리투자증권만이 관심을 받고 있을 뿐 M&A 선상에 오를 수 있는 이트레이등권, 아이엠투자증권, 리딩투자증권,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은 찬밥신세다.

특히 증권업황이 아무리 나빠도 제조업체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 구조도 증권사간 M&A를 어렵게 한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은 비용통제를 통해 적응 단계를 거쳐 유지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많아 구조조정을 통한 구도재편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증권업황이 어려워진 최근에도 증권사들은 M&A 대신 내부 인력감축 등의 자구책을 찾고 있다. 최근 2년간 자산규모 상위 10대 증권사의 직원수는 1700명 이상 줄었다.

◆ 최악의 실적에 신음하는 증권사

증권업계의 구조조정 얘기가 다시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국내 62개 증권사의 2013회계연도(4~9월) 순이익은 251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6745억원)보다 62.6%(4229억원) 감소했다. 2011년 상반기 순이익은 1조2404억원을 기록했었는데, 매년 순이익이 절반씩 줄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증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도 0.6%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경쟁력이 있다는 대형 증권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KDB대우·삼성증권·우리투자·한국투자·현대증권 등 5대 증권사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948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939억원)의 32.3%에 불과하다. 현대증권은 올해 상반기에 184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전환됐다. 이들 증권사는 중소형 증권사에 비해 기업 공개나 회사채 발행 등의 업무에 강점이 있지만, 증시 침체의 영향을 빗겨가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최근 2000선을 넘으면서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여전히 주식 투자를 외면하면서 증권업계가 어렴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다히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증시에 기관과 연기금 비중이 커지고 장기투자 문화가 확산되며 주식 회전율이 떨어져 증권사가 얻는 거래대금 수수료가 줄었다”며 “소형사는 비용 관리에도 불리하고 영업수익이 판관비보다 적어 영업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유승창 KB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대형 금융투자회사 육성을 통해 업종을 선도할 만한 회사가 탄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