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애버리진)은 겨울밤 섭씨 5도 이하의 온도에서도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는 것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 호주의 저명한 생리학자 스탠튼 힉스 애들레이드대 교수는 애버리진들의 생리적 습성을 연구한 결과 이들이 오랜 동안 밤과 낮의 일교차가 큰 추위에 적응해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추위에 익숙해지면서 다양한 온도에 잘 적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한국의 해녀에게서도 발견된다. 해녀들은 추운 겨울철 바닷 속에서도 얇은 잠수복 차림으로 체온을 잃지 않고 물속에서 채취 작업을 한다. 과학자들은 이 역시 추위를 싸우며 익숙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이주영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이달 12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 의대에서 열린 ‘기후변화 건강영향 종합학술대회’에서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한국민의 의생활도 겨울에는 조금 얇게, 여름에는 조금 덜 시원하게 옷을 입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여름엔 두껍게, 겨울엔 얇게 입어야 건강 유지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발표한 제5차 보고서에 따르면 1880년부터 2012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섭씨 0.85도 상승했다. 한국은 1912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평균 0.18도씩 올랐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순조롭게 이뤄지더라도 2050년까지 열대야 일수가 3.7배, 폭염 일수가 1.8배 늘어나는 등 급격한 환경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금세기말 한국의 평균기온은 5.6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급격한 환경변화는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생물은 환경에 유리하게 순응하려는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어 환경이 바뀌면 생리적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적응한다고 본다. 변화된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피하지방의 두께나 털의 굵기, 땀샘 크기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이유로 “날씨에 맞게 옷을 입으면 생체기능 사용이 오히려 떨어져 환경 적응 기능이 퇴화된다”며 “겨울에는 약간 춥게 입고 여름엔 약간 덥게 입는 것이 적응 능력에 보탬이 된다”고 설명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온도 변화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발표를 하고 있는 이주영 서울대학교 교수

하지만 국내 청소년들은 이런 체온 조절 능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겨울만 되면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은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겨울에도 초등학교 학생들이 맨다리를 드러내고 반바지를 입는 일본의 사례와 크게 비교된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말레이시아와 일본 학생을 상대로 열 자극 실험을 한 결과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열 자극에 둔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지역에 살며 오랜시간 더위에 노출되어온 말레이시아 사람이 더위에 더 잘 적응한 것이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얇게 입는 착의 훈련을 통해 추위와 더위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며 “일본의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훈련을 통해 추위를 견디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건강영향 종합학술대회 포스터 전시

◆더 뜨거운 여름, 더 추운 겨울 사망자 늘어난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기후변화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이은일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팀은 겨울철 최저기온에 따른 심근경색환자 발생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겨울철 최저기온이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면 심근경색환자의 응급실 방문이 1~5% 증가한다. 또 일교차가 6.5~7.5도 이상 벌어지는 경우에는 2~4%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팀은 기후변화에 따른 취약계층의 사망률 변화를 분석했다.조 교수는 기온이 올라가면 65세 이상의 호흡기계와 심혈관계 질환 환자의 사망률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종식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여름철 일평균 기온을 26.71도로 할 때 이를 기준으로 1도씩 올라갈 때마다 하루에 숨지는 사망자수가 2.9%씩 늘어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정해관 성균관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지역특성에 따라 기후변화의 발현양상이 다를 뿐 아니라 지역별 인구집단의 적응능력이 다르다”며“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국지적인 지역 단위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