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비자금 의혹의 당사자인 이 모 전(前) 국민은행 도쿄지점장이 지난 2006년에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서는 검찰 수사를 받았던 직원을 은행 내 요직으로 꼽히는 해외 지점장으로 발령낸 것을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검중수부는 2006년 2월 이 전 지점장을 ‘로또 비리 의혹’과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앞선 2005년 9월 감사원은 로또복권 운영 기관인 국민은행과 컨설팅 업체인 영화회계법인(현 한영회계법인), 시스템사업자인 코리아 로터리 서비스(KLS)가 공모해 KLS에 과도한 수익을 보장하는 담합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입찰 참가자격이 없는 영화회계법인을 컨설팅업체로 선정하고 영화회계법인이 제출한 왜곡된 용역결과를 묵인·은폐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민은행은 컨설팅업체 입찰참가 자격을 로또복권 컨설팅 무경험업체로 부당하게 제한해놓고 실제로는 유경험업체인 영화회계법인을 선정했다.
KLS는 한영회계법인이 사업자 선정 제안 요청서를 작성할 때 직접 참여해 수백 회 수정했고 국민은행은 영화회계법인이 임의조작한 예상판매액을 근거로 해외 주요국가보다 3~4배 높은 9%대의 수수료를 결정했다. 감사원은 국민은행이 KLS 측에 유리한 계약을 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이 전 지점장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은행권에서는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직원이 해외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것을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지점 근무는 대다수 직원이 선망하는 자리여서 경쟁이 치열하다”며 “은행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았던 사람이 어떻게 해외 지점장으로 갈 수 있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1년 10월 22일 복권사업팀장으로 발령받았던 이 전 지점장은 2004년 2월 13일 도쿄지점장으로 나갔다가 2006년 5월 25일 송파 지점장으로 복귀했다. 2009년 1월 4일부터는 고덕역 지점장으로 근무했고 2010년 1월 14일 다시 도쿄 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이 전 지점장이 두 번째 도쿄지점장을 하던 시기는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과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의 임기와 대부분 겹친다. 어 전 회장은 2010년 7월부터 올 7월 중순까지, 민 전 행장은 2010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근무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지점장을 두 번 지낸 것은 흔하지 않은데 현지 사정에 능통해 영업을 잘했거나 든든한 ‘빽’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지점장은
국민은행은 이 전 지점장이 검찰 수사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인사 조치 등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개인 신상에 관한 일이고 현재 검사가 진행 중인 사인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지점장은 도쿄에서 근무하면서 최소 1700억원을 부당하게 대출해 수십억원의 불법 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국내로 유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택은행 출신인 이 전 지점장이 승진을 위해 무리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연말 자체 감사에서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정황을 발견하고 이 전 지점장을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