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이었다. 하버드대에서 한국의 과학사에 관한 워크샵이 있었다. 끝난 후에는 만찬이 이어졌다. 하버드 스퀘어의 한 레스토랑에서다. 커다란 탁자 주변에 교수 6명과 대학원생 여러 명이 둘러앉았다. 디저트에 이어 와인을 앞에 두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교수 한 명이 농담처럼 말을 꺼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오늘 누군가가 21세기 하버드대의 최대 위협은 예일이나 스탠퍼드가 아니라 피닉스대라고 하더군요.”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못 믿겠다는 듯 머리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심지어 피닉스대라는 이름조차 그때 처음 들었다.
대체 피닉스대가 어떤 학교길래…. 알고 보니 사이버 대학이다. 100% 온라인 강의로만 운영된다. 지원자는 수강료만 내면 제한 없이 100% 입학할 수 있다. 학교 역사는 불과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등록 학생 수는 30만명이다. 하버드대 졸업생 협회 전체 회원 수와 맞먹는다. 모두가 원격 온라인 강의를 통해 대학 과정을 마치려고 등록한 사람들이다. 미국에서도 온라인 대학 교육은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피닉스대는 최고에 속한다. 가만 살펴 보니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는 게 틀림 없다. 이미 교육계 일부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우리가 알아온 ‘전통 교육의 종언’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피닉스대에 대한 이야기는 곧바로 ‘하버드X’에 관한 대화로 이어졌다. ‘하버드X’는 또 뭔가. 2012년 5월 하버드에서 새로 시작한 사업이다. 하버드와 MIT가 각각 3000만달러씩 출자해 만든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edX’. 그 중 한 축이 하버드X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크(MOOC)’란 단어를 알아야 한다.
◆ 세계 대학들 MOOC 물결에 뛰어들다
지금 미국의 고등 교육계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새 물결이 '무크'다.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의(Massive Open Online Course)'의 약자다.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온라인을 통해 강의를 듣는다는 얘기다. 그전까지 있어온 전통 방식의 강의와는 다르다.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 체험이다. 시청자는 교육 내용을 시청할 뿐만 아니라 참여한다. 질문하고 답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심사가 비슷한 참가자들로 구성된 온라인 공동체와 함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edX’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여기에 속속 뛰어들면서 edX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29개 대학이 손을 잡았다. 하버드와 MIT, UC버클리, 칼텍(캘리포니아공대)을 비롯해 하나같이 이름만 해도 쟁쟁하다. 유럽과 호주, 아시아의 유수 대학들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edX의 학생 수는 현재 약 130만명을 기록 중이다. 등록자 수는 210만에 이른다. 수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한 사람이 여러 강좌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현재 전체 수업 등록자 수를 국가 별로 분류해 보면, 최다가 미국(32%), 그 뒤로 인도(8.6%), 영국(4.3%), 브라질(3.2%), 스페인(2.8%), 호주(2.7%), 중국(1.8%), 러시아(1.6%), 멕시코(1.6%) 순이다.
◆ 한국 등록생은 8명… 샌델 정의론도 제작
하버드X 경우 지난달 해외 수강생 50만명 등록 돌파를 축하했다. 그 중 가장 큰 강좌인 컴퓨터사이언스 입문은 이미 15만명이 넘었다.
의외로 한국인이 적다. 등록된 데이터 상으로는 8월 18일 현재, 한국 등록생은 8명으로 나온다. 일본 등록생이 2000명이고, 아프리카 짐바브웨도 923명이다. 한국인들의 ‘하버드 사랑’을 생각하면 뜻밖의 수치라고 이곳 사람들도 의아해 한다. 하버드 캠퍼스에는 매일 같이 한국인을 태운 투어 버스가 드나든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그 뜨거웠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도 기억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하버드X에는 샌델 교수도 참여했다. 그의 유명한 정의론 강의를 담은 ‘JusticeX’ 제작을 올 여름에 마쳤다.
내 생각에는 한국인의 참여율이 낮은 주된 이유가 아직 이 온라인 강좌가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글이 관심을 낳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하버드생들이 듣는 강의, 아니 그 이상의 특별 강의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료로. 이제는 한국에서 비싼 돈을 들여 하버드 캠퍼스로 가는 게 아니라 하버드의 명강의가 여러분 곁으로 날아가는 시대다.
나는 결국 지난 여름 하버드X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중국을 다룬 인문학 강의 ‘차이나X’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다음달 31일 강의 개설을 목표로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이다. 그동안 제작 과정을 내부자의 시선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차이나X 강의에는 벌써 2만명 가까운 수가 사전 등록을 마쳤다.
지난 4개월 동안 강의 제작 준비 작업을 거치면서, 나는 온라인 교육이 앞으로 하버드 캠퍼스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지 알 수 있게 됐다.
다음 편 글에서는 ‘차이나X’ 제작과 관련된 캠퍼스내 논쟁과 이면의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한다. 그 전에 여러분 중 누구라도 하버드X의 수강생이 되고 싶다면 우선 www.edx.org나 harvardx.harvard.edu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