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3년만 지켜보고 접으려고요.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아파트에 들어가는 붙박이장·신발장을 만들어 건설사에 납품하는 F사 박모(52) 대표는 5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잘나간다" 소리를 들었다. 수도권 주택 시장이 좋았던 2004~2005년만 해도 연 매출액이 120억원에 달했다. 가구 디자이너와 설치 기사 등 정규직 직원만 40명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건설사들이 공사를 꺼리면서 일감이 점점 줄기 시작한 것. 올해는 매출 60억원도 넘기기 어려워 직원을 20명 선으로 줄였다. 3년째 적자 운영이다. 얼마 전엔 회사 운영 자금을 마련하느라 공장을 담보로 10억원을 더 대출받았다.
박 대표는 "공장 감정가가 20억원인데 지금 대출 잔고가 16억원"이라면서 "당장 회사를 접고 싶지만 이미 납품한 가구는 3년간 하자 보수를 해주지 않으면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당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는 건설사뿐 아니라 연관 산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건설업이 죽으면 주택을 짓는 과정에 들어가는 시멘트·철근·목재·배관·유리(창문)와 같은 각종 자재를 생산하는 업체들의 상황도 덩달아 나빠지기 때문이다. 또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중개업소·이삿짐센터·가구업체·인테리어업체·도배업체·음식점·재활용업체 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산업연구원은 건설 경기 침체로 2008년 이후 2009년을 제외한 4년간 건설 연관 산업 생산액이 41조원이나 줄어든 것으로 추산한다. 2009년은 정부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는 등 인위적 부양책을 썼던 이례적인 시기다.
실제로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가 가져온 '후폭풍'은 가시화하고 있다. 국내 판유리 시장 1위 업체인 한국유리는 지난 6월 약 40년 만에 부산공장에서 판유리 생산을 중단했다. 건설 경기 침체로 유리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시멘트·레미콘 업계에서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레미콘 사업을 1970년대 중반부터 40년 이상 해온 동양그룹은 올해 보유하고 있던 공장 44곳 중 20여개를 매각하는 등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유진기업도 시멘트 사업을 정리하는 중이다.
건설산업연구원 이홍일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 투자 비중은 13%대로 10% 안팎인 선진국보다 높다"며 "건설업이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구조"라고 말했다.
특히 서민 생업 기반인 이삿짐센터나 인테리어업, 공인중개사무소 등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15년간 소규모 이사·용달업체를 운영한 최모(58)씨는 "요즘 일감은 줄고 인건비는 오르는데 이사비는 제자리여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했다. 보통 5t트럭 1대 분량 이사를 하고 받는 돈은 50만~60만원 선. 이삿짐 나르는 직원 4명에게 10만원씩 주고 기름 값을 대고 나면 10만원밖에 안 남는다고 한다. 그나마 이사 물량도 줄어 1주일에 1~2번씩 일 나가는 게 고작이다.
공인중개사도 갈수록 줄어 수도권에서는 상반기 기준으로 공인중개사 수가 4만9778명으로 7년 만에 5만명을 밑돌았다. 올해 4·1 부동산 대책 등으로 주택 거래가 다소 늘고는 있지만, 실제 공인중개사 1명이 한 달 동안 중개한 거래는 평균 3.56건에 불과하다. 사무실 운영비를 내기도 빠듯해 지난해 서울에서만 5000곳 넘는 공인중개사무소가 휴업이나 폐업을 했다.
고용 불안도 이어진다. 건설산업연구원은 2008년 이후 2009년을 제외한 4년간 건설 관련 취업자 수가 51만1000명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줄어든 단순노동직이나 기능직 일자리 취업자가 23만5000명에 달한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서민 계층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전국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0)씨도 "수입이 4~5년 전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공사가 끝나면 하도급 대금을 받아서 밥값을 주겠다던 업체가 부도가 나 밥값을 떼인 경우가 2~3년 전부터 급속히 늘고 있어요. 밥값 받겠다고 업체에 가압류를 걸 때는 씁쓸해집니다. 서민들 삶만 팍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