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현대자동차가 품질과 관련해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오르면서 그동안 쌓아온 '품질 경영' 이미지에 균열이 발생했다. 소비자들이 수차례 문제 제기에 나선 후에야 마지 못해 결함을 인정한 점은 글로벌 기업 답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올해 4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브레이크 스위치 문제를 제기한 직후 300만대 가까운 자동차를 즉각 리콜한 것과는 달리, 국내의 품질문제에 대해서는 늑장 대처해 국내 소비자 역차별 논란도 불붙었다.
◆ 현대차 "아반떼 누수 평생보증"
28일 현대차는 준중형 세단 '아반떼' 엔진룸 누수 문제와 관련, 향후 부품 부식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폐차시까지 무상보증한다고 밝혔다.
아반떼는 최근 앞유리와 보닛의 접점인 '카울 톱'에서 누수가 발견돼 차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현대차 관계자는 "엔진룸 내 부품들은 2중 방수처리가 돼 있어 누수가 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지만, 소비자 불만을 종식시키기 위해 평생 무상수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엔진룸 내 누수는 해당 모델을 리콜할 만큼의 중대한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실내로 물이 차면 전자제어장치(ECU) 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엔진룸 쪽 누수는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덜하다"고 말했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도 "엔진룸은 비가 오면 비가 튀어 들어올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어느 제조사든 2중·3중의 방수처리를 하는 곳"이라며 "단순 누수로 부품이 부식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2010년 미국 크라이슬러가 '타운 앤드 컨트리'와 다지 브랜드 미니밴 '그랜드 카라반'을 에어컨 누수로 인한 에어백 오작동 가능성 탓에 36만7000대 리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엔진룸에서 단순 누수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리콜이 실시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여론 들끓자 늑장 대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반떼 누수 사태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자동차 동호회 등에서 산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땐 1년 가까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올들어 연일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그제서야 마지 못해 무상보증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번 싼타페 누수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싼타페 트렁크쪽에 물이 샌다는 불만이 처음 제기된 건 지난해 장마를 전후해서다. 당시 현대차는 일부 차량에 국한된 문제, 혹은 고압 세차로 인한 누수라며 별다른 보상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7~8월 집중 호우가 쏟아지고 대부분의 신형 싼타페 차주들이 누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자 공식 사과와 함께 무상수리 기간 연장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 "한국 소비자는 봉인가"
현대차의 이 같은 처사는 미국에서 브레이크 스위치 문제가 제기되자 일사불란 리콜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어서 국내 소비자들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다.
현대차는 올해 4월 미국 NHTSA가 브레이크 스위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지 불과 3개월만에 전격 리콜을 수용했다. 이로써 미국에서만 베라크루즈, 구형 싼타페, 구형 아반떼 등 187만대를 리콜한데 이어 세계적으로 300만대 가까이를 리콜했다. 이는 역대 현대차 리콜 규모중 최대다.
싼타페 차주인 김주미씨(34·경기도 부천)는 "석달 전 수리센터에 갔을 때는 아무 문제 없다며 돌려 세우더니 단체로 문제를 제기하자 공식 사과에 나섰다"며 "미국 소비자였다면 자발적 리콜이나 하다 못해 즉각적인 사과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시장이 큰 미국과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 이중 잣대를 들이 대고 있다"며 "소비자 불만이 제기되면 즉각 조사에 나서는 미국 교통 당국과 달리 여론이 들끓은 이후에 늑장 대응하는 우리 정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