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경기도 시흥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 공장. 현대·기아차에 납품할 차체 부품 생산 라인에 들어서자 부품을 찍어내는 프레스(압축가공기계) 주변에서 직원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이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29일과 30일에 기아차 노조가 4시간의 부분파업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현대차가 28일과 30일 각각 8시간씩 부분파업을 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현대·기아차가 파업을 하면 이 공장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하루 5시간(주간조 3시간, 야간조 2시간)의 잔업 물량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주말 특근도 하지 못하게 된다. 25년째 이 공장에서 일했다는 A씨는 "월급의 3분의 1이 잔업·특근 수당인데 다 날아가게 생겼다"면서 "파업이 길어지면 대리운전 알바(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현대차 파업에 협력업체 비상"
현대·기아차의 잇따른 파업으로 협력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28일 현대차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 협상을 진행하며 5일간 부분 파업을 강행했다. 지난주에는 주말 특근도 거부했다. 회사측이 추산한 생산 손실은 2만3748대. 금액으로 4868억원에 이른다. 기아차도 하루 부분파업과 주말특근 거부로 852억원어치에 해당하는 4819대의 차를 만들지 못했다.
피해는 협력업체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1·2·3차 협력업체는 5000여곳, 직원 수는 4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날 찾은 업체의 경우 현대차가 4시간(잔업 포함 5시간) 부분 파업을 한 지난 20일 매출액이 파업이 없었던 전날보다 14% 줄었다. 일감이 줄어도 기본급은 그대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대형 장비가 많아 고정비 비중이 높기 때문에 매출 손실이 손익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한다.
B 부사장은 "파업 일정이라도 미리 알 수 있으면 생산 일정을 조절해 보겠는데, 파업을 하루 전에 결정하기 일쑤여서 공장 운영이 매우 어렵다"면서 "남는 시간에 공장 청소 등을 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생산 라인을 돌리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 협력사 직원들은 생계 막막
회사도 회사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은 이들 협력업체의 직원들이다. 25년차인 A씨는 지난달 277만원을 벌었다. 소득세와 건강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실제 받은 돈은 246만원. 이 중 96만원이 하루 2~3시간 잔업과 매주 토요일 10시간가량의 특근을 해서 번 돈이다. A씨는 현대·기아차가 주말 특근을 거부했던 지난 3~5월 특근을 하지 못해 월급이 40만원쯤 줄었던 적이 있다.
최근 시작된 현대·기아차 파업으로 A씨는 또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감이 없는 상황이 연중 반복되는 것이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최악의 경우 잔업과 특근을 모두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월급 3분의 1이 날아간다. A씨는 "주말이라고 쉬고 싶어 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면서 "생계에 직결되기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일을 더 하고 싶은데, 귀족노조인 현대·기아차 노조가 자꾸 공장을 세워 죽을맛"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현대차 직원의 평균 근속 연수는 17.5년. 평균 연봉은 9400만원이었다. 반면 이날 찾은 부품 업체의 평균 근속 연수는 15년. 평균 연봉은 3600만원 가량이다. 부품업체 직원들의 연봉이 현대차의 절반도 안되는데 이마저도 보장이 안 되는 상황이다.
A씨는 "그나마 우리 회사가 1차 협력회사여서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2~3차 협력사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A씨는 "현대차 직원들은 협상이 타결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그 동안 못 받은 돈을 보전받지만, 우리 협력업체는 그런 것도 없다"면서 "회사 수익이 줄면 내년 초 급여 인상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벌써부터 걱정거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