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현대자동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달 '올 상반기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서울 도산대로에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건물 전체를 한 브랜드가 사용하는 체험매장)'를 열어 고객 맞춤 마케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적발표회에서 구체적인 수입차 대응 방안에 대해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본부장이 말한 서울 도산대로는 수입차 전시장이 몰려 있어 '수입차 성지(聖地)'라고 일컫는 곳이다. 현대차가 실적발표회에서 이를 언급할 정도로 도산대로 전시장은 의미가 있다. 수입차의 확장세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수입차 공세는 현대차 내수 시장에 위협을 줄 정도로 파죽지세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내수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0.7% 감소한 32만5518대를 판매했다. 반면 수입차 브랜드들은 전년 동기 대비 19.7% 성장한 6만2239대를 판매했다.

현대차가 도산공원 사거리에 2년째 리모델링 건설을 진행중이다.

◇작년부터 리모델링 중

지난 18일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등 프리미엄 수입차 전시장들이 즐비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공원 사거리. 사거리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에스에스모터스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6층짜리 건물 전체에 가림막이 쳐지고 '현대차 마크'와 '현대건설'이란 시공사 푯말이 크게 붙어 있다. 이 건물 사거리 대각선으로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길 바로 건너편에는 BMW 매장이 버티고 있다. 벤츠 양옆에는 포드와 푸조가 있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폴크스바겐, 마세라티가 버티고 있다.

현대차가 이 건물에 대해 통째로 임차계약을 맺은 때는 작년 7월. 닛산차의 프리미엄브랜드인 인피니티 차량을 판매하던 전시장이 빠져나가면서 맺은 계약이었다.

현대차가 이 전시장을 단순히 테스트 마켓으로 삼으려고 들어온 것 같지는 않다. 현대차는 이 건물을 보증금 30억원에 2019년까지 7년간 장기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월세는 별도다. 적어도 상황 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방증인 셈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기존 건물 형태에서 약간의 손질을 가하고 올 상반기 전시장을 열 것으로 봤다.

하지만 현대차에 따르면 올 연말에도 열 계획이 없다. 인근에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전시장보다 더 멋지고 화려하기 꾸미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건물 전체를 신축이나 다름없이 손을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빨라야 내년 상반기에나 전시장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리모델링 공사가 2년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한 프리미엄 수입차 업계 국내 법인 사장은 "보통 건물 리모델링은 6개월이면 되는데 2년 가까이 리모델링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도대체 얼마나 호화롭게 꾸밀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수입차에 대한 대응 점점 거세질 듯

올 연말 차세대 럭셔리 대형세단인 신형 제네시스를 출시하고, 내년 중 수입차 거리로 통하는 도산대로에 프리미엄 전시장을 여는 것은 현대차에 의미 있는 일이다. 수입차가 도산대로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등이 앞다퉈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도산대로' 자동차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 거리가 한국 수입차 열풍의 진원지나 다름없다.

현재는 높아진 땅 값 때문에 수입차 브랜드도 하루가 멀다고 자리를 옮기고 있다. 차가 잘 팔리면 도산공원 사거리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고 잘 안되면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식이다.

수입차 본거지에 현대차가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 9곳에서 비교시승센터를 운영 중이다. 서울 강남과 목동, 성남 분당, 부산 등 한결같이 수입차와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선 현대차와 수입차를 같이 타 봄으로써 직접 비교할 수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와 벤츠E300 또는 BMW5 시리즈, 쏘나타는 도요타 캠리, 벨로스터는 미니쿠퍼, i30는 폴크스바겐 골프와 함께 시승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