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설비 투자를 전년 대비 5조원 가까이 줄인 삼성전자가 하반기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 설비가 대부분 해외에 들어서기 때문에 국내 경기 활성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삼성전자는 26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사상 최대인 24조원을 생산 설비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였던 작년 투자액(22조8500억원)보다 1조원 이상 늘어난 액수다. 주요 투자 분야는 반도체 사업(13조원)과 디스플레이 사업(6조5000억원)이다. 휴대전화 등 나머지 사업 투자액은 4조5000억원이다.
삼성전자는 과거 연초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달리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경기 상황을 보고 탄력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상반기 삼성전자는 몸을 사리며 보수적으로 투자했다. 올 상반기 투자액은 작년 상반기보다 4조9500억원이 적은 9조원에 그쳤다. 유럽 경제 위기·엔화 약세 등 글로벌 경영 여건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 투자계획 발표는 삼성전자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사상 최대 실적이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2분기 사상 최대 실적(매출 57조4600억원·영업이익 9조53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상반기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매출 110조3000억원·영업이익 18조3100억원)다. 삼성전자 IR팀장 이명진 전무는 "하반기와 내년 시황을 감안하면 투자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 상반기보다 최소 6조원 이상 더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밝힌 투자 계획에는 신규 설비 투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즉 새로 공장을 만들기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공장 건설 속도를 높이고 사용 중인 장비를 최신 제품으로 대체하겠다는 의미다. 한국투자증권 서원석 연구원은 "반도체 투자 13조원 가운데 8조~9조원은 기존 설비를 최신 설비로 대체하는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삼성전자가 건설 중인 공장은 대부분 해외에 소재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西安)에 총 70억달러(7조7700억원)를 투자해 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내년 상반기부터 제품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또 상하이 인근 쑤저우(蘇州)에 건설 중인 LCD 공장은 올해 말 제품을 토해내기 시작할 예정이다. 이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30억달러(3조3300억원)다.
또 삼성전자는 40억달러(4조4400억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의 플래시 메모리 생산라인을 스마트폰용 연산장치(AP·Application Processor) 생산라인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올 하반기부터 제품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베트남 휴대전화 공장도 계속 증설 중이다. 지난 6월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가 옌퐁공단 공장에 10억달러(1조11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선 화성 사업장에서 신규 반도체 생산라인(17라인)을 만들고 있다. 투자 금액은 총 2조2500억원으로 올해 안에 완공하는 것이 목표다. 결국 삼성전자가 거액을 투자해도 국내에선 그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 공장과 설비는 대부분 해외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사상 최대 투자가 국내 내수 활성화를 견인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