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 동인광학 3층 방산(防産)물자 조립라인. 한쪽에 있는 '클린룸' 안에선 여직원 3명이 렌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 등에서 볼 수 있는 10평 규모의 클린룸은 대형 공기청정기를 통해 걸러진 공기만 유입되도록 밀폐돼 있다. 공기로 몸 전체의 먼지를 제거하는 '에어샤워실'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대구경(大口徑) 도트사이트(무배율 광학 조준경).

이 장비는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석해균 선장 등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 때 공중지원에 나섰던 링스 헬기의 K6 기관총에 장착됐던 장비다. 도트사이트는 사격할 때 명중률을 높여주는 광학장비다. 일반 총으로 사격할 때는 총구 끝에 달린 가늠쇠와 눈 바로 앞에 놓이는 가늠자, 그리고 시선을 일치시키는 '조준선 정렬'이 필요하지만, 도트사이트는 이를 자동으로 조정한다. 조준경 안에 표시되는 빨간 점(도트)을 표적과 일치시킨 뒤 방아쇠만 당기면 끝이다. 숨을 멈추고 한쪽 눈을 감고 어색한 자세로 사격할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진압 작전 등을 펼치는 특수부대원들이 선호한다.

동인광학은 방산 선진국에서만 만드는 도트사이트를 제조하는 국내 유일 회사. 2007년엔 세계 어느 업체도 성공하지 못한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독자 개발했다. 이전까진 지름 44㎜가 최대였지만, 이 회사는 지름 120㎜짜리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동안 세계 각국의 군에서는 소총에 쓰이는 작은 사이즈의 도트사이트를 기관총과 같은 대구경 무기에도 장착해 사용해왔다. 대구경 무기에 맞는 도트사이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인광학은 이런 상황을 일거에 뒤흔들어놓았다. 동인광학은 우리나라와 미국·일본·중국·EU(유럽연합)에서 대구경 도트사이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부천의 방산업체 동인광학에서 정인 사장(앞줄 왼쪽)과 직원들이 대구경 도트사이트가 장착된 모형 기관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지름 120㎜의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개발, 미국 등 12개국에 수출했다.

동인광학 제품을 제일 먼저 눈여겨본 건 미국이었다. 동인광학이 2007년 시제품을 대전 국방벤처마트에 전시한 지 한 달 만에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제품을 대사관으로 갖고 올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대사관에서 정 대표의 설명을 들은 주한미군 관계자는 "한 달만 시제품을 빌려주면 미국에 가서 군 관계자에게 브리핑하겠다"고 했다. 이후 미군의 테스트가 진행됐고, 동인광학은 2년간 8차례에 걸쳐 미군이 요구하는 제품사양 수정 작업을 거쳐 2009년 미 해군에 완성품을 납품했다. 이듬해엔 미국 핵무기 개발의 산실인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도 자체 경비용으로 동인광학 제품을 구입해갔다.

정 대표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는 세계 최고의 제품들만 납품할 수 있다"며 "미군과의 거래 소식이 알려지면서 노르웨이·우크라이나·프랑스·사우디아라비아·캐나다 등 각국에서 주문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2009년 첫 수출 이후 동인광학은 12개국에 총 37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올 들어선 우리 군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작년 10월 방산업체로 지정됐고, 납품 계약을 체결, 앞으로 5년간 290억원어치의 제품을 납품할 예정이다.

대구경 도트사이트 개발 후 회사는 성장세다. 2007년 13명이던 직원은 현재 140명으로 6년 만에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2007년 8억2000만원이던 매출도 작년에 152억원으로 19배가량 늘었고, 올해는 18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선진국의 거대 방산업체도 못 해낸 대구경 도트사이트 개발의 비법은 생활 속의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동인광학 정인 대표는 "미국 업체들은 복잡한 공식과 첨단장비로 개발에 나섰지만 실패했었다"며 "우린 도수가 다른 안경 수십 개를 사다 놓고 지름을 키울 때마다 배율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늘 오후 5시 40분 TV조선(CH19)'황금펀치'서 방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