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가 주위 시선이나 학교 인지도에 연연해 연구할 대학을 정하면 안 되죠. 연구하기에 적합한 전문가가 모여 있고, 실험 장비 등을 갖췄는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염한웅(廉罕雄·47)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과학자가 평생 논문을 한 번도 올리기 어렵다는 물리학계 최고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PRL)에 28번이나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교수 중엔 노태원 서울대 교수(35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논문을 PRL에 올렸다. 그가 노 교수보다 10년 정도 어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보적인 연구 성과라는 평가다.

이게 가능했던 건 염 교수가 나노선(nano wire)이라는 분야를 세계 최초로 개척했기 때문이었다. 나노선은 원자 하나를 한 줄로 배열해 만든 가장 가느다란 선. 염 교수는 1999년부터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기판 위에 금 원자 등을 한 줄로 배열해 두께 1㎚(나노미터·1㎚=10억분의 1m)의 나노선 분야를 시작했다.

염한웅 포스텍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진공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염 교수는‘나노선’(nano wire)이라는 원천 기술을 개발해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선폭(線幅)이 얇은 나노선은 반도체 산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성패는 전자회로의 선폭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폭이 줄수록 반도체 성능은 향상된다.

"최근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이 한계에 봉착해 나노선을 반도체에 적용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제가 먼저 시작한 나노선이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원천 기술이 부족한 국내 연구 풍토에서 염 교수가 나노선이라는 창의적 기술을 개발한 밑바탕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있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그는 1989년 미국의 유수 대학이나 모교가 아닌 당시 신생 학교인 포스텍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교 인지도보다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먼저 따져 학교를 정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주위 눈치 안 보고 연구에 집중하고자 박사과정은 전북대에서 밟기로 했다. 그의 연구 주제였던 실리콘 산화 분야 전문가가 전북대에 있었다.

하지만 굴곡도 있었다. 불과 몇 달 만에 학교를 자퇴한 것. 지도 교수 지시대로 하면 실험이 실패로 끝날 것 같아 토론을 벌이다 사이가 벌어진 것이다. "그때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연구를 포기할 수 없어 일본 도호쿠(東北)대학 고노 교수에게 '박사과정으로 받아 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다행히 허락하더군요."

일본에서 그의 연구 역량은 꽃을 피웠다. 그는 박사 학위를 불과 2년 반 만에 마치고 논문을 6개나 발표했다. 도쿄대 화학과에서 염 교수를 스카우트했다. 도쿄대 부교수 시절 "한국 과학 발전을 위해 귀국해 달라"는 연세대의 제의를 받고 한국으로 왔다.

그는 연세대에서 논문 100여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고, 2009년 일본 응용물리학회가 주는 아시아의 젊은 과학자상도 받았다. 하지만 서울 생활을 툴툴 털고 그는 2010년 다시 포스텍으로 옮겼다.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나노선을 여러 교수와 같이 연구하고 싶었는데, 포스텍에서 교수 두 명을 뽑을 수 있는 권리를 내게 주겠다고 해서 옮겼다"고 했다. 그는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의 단장으로 선출돼 연간 70억원대의 연구비를 향후 10년간 지원받는다.

그의 목표는 '연구단을 나노선, 그래핀(탄소 원자로만 이뤄진 나노 물질) 분야의 세계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분명 세계 과학계가 포항을 주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