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실시된 이노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 조사는 재계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 민주화'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한 곳이 현대자동차 그룹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그룹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1조 2000억원을 투자해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노션·글로비스가 독점하다시피 한 광고·물류 일감을 중소·중견 기업에 개방키로 한 바 있다. 더욱이 정몽구 회장은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경제사절단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따라서 경제 검찰인 공정위의 칼 끝은 현대차 계열사를 제외한 다른 그룹으로 먼저 겨냥될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많았다. 이노션은 어떤 기업이길래 박근혜 정부의 사정 대상이 된 것일까.

◆ 설립 이듬해 1000억대 기업으로 급성장

이노션 로고.

이노션은 2005년 5월 현대차그룹의 광고대행 전문 계열사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 정몽구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지분 40%를, 정몽구 회장과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이 각각 20%·40%씩 지분을 보유했다. 현재도 이 지분율은 유지되고 있다.

이노션은 설립한 지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광고업계 어떤 기업도 달성하지 못한 고성장을 거듭했다. 설립 첫 해 6개월 동안 35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듬해인 2006년 곧바로 매출 1000억원을 넘긴 1170억원을 기록했다. 2006년 영업이익도 218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매출 4112억원, 영업이익616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5%에 육박한다.

2006년부터 계산해 보면 불과 8년 만에 매출 4배, 영업이익은 3배로 늘었다. 이노션 지분 100%를 정몽구 회장 일가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기간 늘어난 지분 가치나 현금배당 등은 모두 회장 일가의 재산으로 환원됐다. 현대차 그룹 계열사들이 이노션에 광고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회장 일가 재산 증식을 도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그룹이 광고를 발주할 때 경쟁 프리젠테이션(PT)을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일감의 대부분을 이노션이 독식한다"며 "괜히 힘빼지 않기 위해 현대차 계열사 경쟁 PT는 참여하지 않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 이노션, 제 2의 글로비스 되나

이노션이 회장 일가 재산 증식에 동원됐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현대차 그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질 당시에도 이노션은 현대글로비스·현대엠코와 함께 현대차 비자금 통로로 의심받았다.

당시 수사의 주요 표적이었던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출범 첫해 매출 1985억원에 순이익 65억원을 올렸고, 불과 4년 뒤인 2005년에는 매출 1조5408억원에 순이익 799억원을 냈다. 이처럼 눈부신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현대글로비스가 국내 자동차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탁송(託送)과 수출차량 운반 업무를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비스 설립에 정 회장 부자가 투자한 돈은 약 50억원. 하지만 매년 파격적인 배당에다 노르웨이 물류업체 빌헬름센사(社)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이미 투자금의 수백배에 달하는 수익을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분의 대부분을 정몽구 회장 일가가 가지고 있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회사가 성장했다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은 통하는 점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비록 현대차그룹이 광고 물량의 상당 부분을 중견·중소 기업에 나눠주기로 했지만 시기상으로 많이 늦었다고 본다"며 "지난 8년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실을 공정위가 좌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