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강남시승센터 주차장에 벤츠 E300이 모습을 나타냈다. 현대차 안방에 벤츠차가 들어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벤츠에서 내린 사람은 직장인 박정현(42)씨. 인근 의류회사 영업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현대차가 2년째 벌이고 있는 '수입차 비교체험 시승 이벤트'에 참가한 직장인이다.
현대차는 이달 3일부터 7월 31일까지 전국 9개 수입차 비교시승센터에서 직장 동료와 함께하는 수입차 비교체험 행사를 벌이고 있다. '벨로스터-BMW 미니쿠퍼', 'i30-폴크스바겐 골프', '쏘나타-도요타 캠리', '제네시스-BMW528i 또는 벤츠E300' 등의 조합을 하나를 선택해 비교시승 참가자를 홈페이지에서 공모했다. 박씨는 직장 동료 함석원(42) 부장과 짝을 이뤄 '벤츠와 제네시스'를 비교시승했다.
수입차 비교시승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달고 이 행사를 벌이는 이유는 말 못할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수입차의 한국 시장 공략이 거세지고, 현대차 대신 독일·일본·미국 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현대차 국내마케팅실이 내린 결론은 현대차를 이와 경쟁하는 수입차종을 직접 비교하게 하는 것이었다. 비교시승센터 지역도 강남·분당·목동·대전·대구·인천·광주·용인 등 수입차종이 잘 팔리는 곳으로 잡았다. 회사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참조할 만한 전례가 없고, 자칫 역효과가 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회사 측의 기대 반, 우려 반과 달리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폭발이었다. 작년 처음 이 행사를 벌인 결과, 공고 2시간 만에 신청자가 꽉 찼다. 전화로만 접수를 했는데, 선착순인 줄 모르는 소비자들의 항의전화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올해는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으로 진행 방식을 바꿨는데도 지원 열기는 더 뜨거웠다. 2200명이 몰려 추첨으로 570명만 7월 말까지 체험할 수 있다.
비교시승 결과는 어땠을까. 이날 만난 박 부장은 "제네시스와 그와 비슷한 수입 차종을 고려하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했다"며 "실내 정숙도·가격 등을 고려해서 구입 차종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비교시승 결과를 크게 두 갈래로 받아들인다. 첫째는 현대차에 대한 일부 오도(誤導)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교체주기는 짧으면 2년이지만 길면 10년까지 늘어난다. 따라서 일부 소비자는 현대차의 최근 발전한 것을 놓치고, 예전 이미지만 갖고 있다. 이들에게 수입차와 현대차를 동시에 몰아보게 하는 일은 현대차의 변화를 직접 느끼게 해줄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실제 작년 시승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벌인 결과 제네시스-벤츠E300을 탄 참가자들은 시승 행사에 참여하기 전 구매희망 차종은 현대차 26명, 수입차 17명이었다. 시승행사 후에는 현대차 32명, 수입차 8명으로 급변했다. 쏘나타와 캠리 비교시승자 중엔 시승 전 현대차 32명, 수입차 16명에서 시승 후 현대차 39명, 수입차 7명이었다.
물론 현대차가 마련한 행사이고, 시승센터 직원들도 현대차에 유리한 말을 많이 하기 마련이어서 이 조사가 전체 소비자의 정서를 나타낸다고 보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대차가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는 점에서 비교시승 행사는 국내 시장의 변화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현대차와 독일·일본차를 비교해서 현대차의 약점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이 현대차에 대해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작년 시승 참여자를 대상으로 항목별 시승 평가를 받은 결과, 실내 디자인·실내고급감·정숙성·공간성·편의사양·조작편리성·트렁크 용량 부문에서 현대차가 수입차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가속력·핸들링·제동 성능에서는 수입차가 더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