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흥미롭습니다. 대도시 한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산동네 마을이 있는 건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지난 3일,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시노하라 도루씨는 영어로 "뷰티풀(beautiful·아름답다)"을 외치며 이같이 말했다.

부산의 대표적 달동네 감천동이 주민과 지자체, 그리고 예술가들의 협력으로 국제적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부산 사하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은 9만8384명으로, 2011년 2만5000명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2일 끝난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엔 사흘간 무려 2만5000명이 다녀갔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인 3일에도 마을 곳곳엔 소그룹 단위의 관광객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탐방 중이었다. 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온 정소영(26)씨는 "휴가를 내고 부산에 내려왔다"며 "감천문화마을은 부산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말했다. 사하구는 올해 20만명이 다녀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란민이 만든 달동네가 국제적 명소로 변신

지난 2일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서 열린 골목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마을 입구의 캐릭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달동네였던 감천2동은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조성한 예술 작품을 통해 외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감천2동은 1950년대 피란민들이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 해발 200~300m 비탈에 판잣집 1000여가구를 지어 이주하면서 조성됐다. 이곳엔 아직도 10평도 안 되는 크기에 매매가가 1000만원대인 집이 수두룩하다. 총 4500여가구 9600여주민이 살지만 부동산중개업소가 한 군데도 없다. 개인 화장실이 없어서 공동 화장실(40여개)을 쓰는 집도 500가구가 넘는다. 도시가스가 들어와 있지 않아, 겨울엔 연탄이 주 난방수단이다.

그럼에도 감천문화마을은 골목투어의 성지(聖地)가 됐다. 이웃들과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공동체 의식을 지닌 주민들,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세우는 재개발 대신 '문화'와 '스토리'를 택한 사하구청, '주민의 삶을 바꾸는 미술'을 위해 헌신한 지역 예술가들의 노력이 기적을 만든 것이다.

골목 골목을 향수 어린 문화 공간으로 변모시킨 감천문화마을은 집집마다 지붕과 벽을 빨강, 파랑, 초록색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한 이국적 풍경으로 인해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고 있다.

마을의 변신은 2009년 6월 시작됐다. 주민들과 지역 예술가·자치단체 등이 합작, 변신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가 프로젝트 명이었다. 마을 곳곳에 고추잠자리, 민들레 홀씨, 사람 얼굴을 한 새 등의 크고 작은 조형물이나 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2010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에 선정돼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가 더해졌다. 빈집 5곳에 창작·전시 공간을 만들고 골목길 곳곳에 벽화와 예술 작품을 설치, 마을 전체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300㎡의 마을 공터에 주민들이 모여 쉴 수 있는 문화 마당을 조성했다.

예술가들과 주민이 함께 만든 명품 마을

문화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소극적이던 주민들도 각종 프로젝트에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마을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1년엔 주민들이 만든 도자기·스카프·액세서리 등을 파는 아트숍을 개설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산시가 지원하고 동서대가 주관하는 '영화의 집' 3호점에 선정됐다. 마을 곳곳엔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했던 곳이란 안내판이 붙었다.

주민들은 봉사단, 사업단 등으로 구성된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를 통해 마을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봉사단은 당번을 정해 주말마다 관광객 안내, 주차 등을 담당하고, 사업단은 '감내 카페' '감내 맛집' 등 사회적 기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예술인들의 역할도 컸다. 공동체 미술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의 단체인 '아트 팩토리 인 다대포' 진영섭 대표는 감천문화마을 조성을 초창기부터 주도했다. 진 대표 등은 '대중과 괴리된 어려운 미술'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친절한 미술'을 하자는 생각에서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진 대표는 "마을에 설치한 미술작품도 전문 미술가들 단독으로 만들지 않고, 주민들을 교육해서 일정 부분 공동 창작의 형태를 취했다"며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획일적인 재개발 대신 기존 마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한 부산시·사하구청의 노력이 현재의 명품 마을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