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은 우리 경제의 화두(話頭)로 부상했다. 기업은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지만 고용 인원은 별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들이 금융위기 이후 매출 성장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을 더 많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1~2007년엔 매출이 100억원 증가할 때마다 고용이 0.4명 늘었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2년엔 5.3명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조선일보와 한국기업공헌평가원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에 상장된 1800여개 기업의 2001~2012년 사업보고서를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된다는 통념(通念)과 달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성장이었다. 조사에는 이종천 전 한국회계학회장 등 회계학·경영학과 교수 9명이 참여했다. 또 1800여개 기업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공헌도가 높은 기업 1·2위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 나은 미래'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공인회계사회·한국기업공헌평가원과 함께 '2013 한국 기업 국가·사회 공헌도' 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기업 성장이 일자리 창출
조사에선 국내 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10대 산업의 고용 창출 기여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자동차·전자·통신·화학 등 10대 산업은 금융위기 이후 매출 100억원 증가 때마다 6.2명을 추가 고용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고용 증가가 1.4명에 그쳤다.
특히 이번 조사에선 연구·개발(R&D) 투자가 설비 투자보다 고용과 매출 확대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기업이 설비 투자를 1억원 늘릴 때마다 고용은 0.4명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R&D 투자액이 1억원 증가할 때마다 고용은 1.3명 증가했다. 또 설비 투자액이 1억원 늘어나면 매출은 약 2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R&D 투자액 1억원 증가는 매출을 15억원 이상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천 한국기업공헌평가원 이사장은 "고용 없는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면서 "특히 R&D에 대한 적극적 투자로 제2의 전자·자동차·조선 산업을 키워야 경제 성장은 물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대 기업 법인세 납부액 40% 넘어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헌도가 높은 상위 10개 기업으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외에 기아자동차·현대중공업·KT·LG전자·LG디스플레이·포스코·한국전력·삼성중공업이 포함됐다. 가치 창출과 외화 획득, 국민소득과 국가재정, 일자리 창출, 국가경쟁력, 사회·환경 등 5개 부문을 기준으로 삼은 조사결과다.
삼성전자는 제품 생산·수출액, 국민소득·국가재정 기여액, 고용 인원, 설비·R&D 투자액, 기부액 등으로 평가하는 5개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1만5000여명이 근무하던 LCD(액정화면) 사업을 분사하면서, 국민소득 기여액, 법인세, 고용 인원은 소폭 줄었다.
국가·사회 공헌도가 높은 상위 10개 기업의 지난해 분야별 집중도는 평균 3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개 기업이 제품·서비스 생산액(446조원)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5%였으며, 국민소득 기여액(27조원) 비중은 36.5%였다. 상위 10개 기업이 지난해 납부한 법인세(6조5790억원)는 1800여개 기업이 납부한 총액의 41.5%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