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현대·기아자동차 빌딩 입구.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수출 실적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현대차 수출팀이 해외 다수 지역에서 상습적으로 허위 실적을 보고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본지 5월 20일자 '[단독] 현대차, 제휴사에 실적 부풀리기용 허위거래 강요' 참조)

베트남에서 현대차 상용차를 판매한 A사의 오모 사장은 7일 "현대차가 베트남 현지 협력사에 수출 물량을 넘긴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허위 세금계산서까지 발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협조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폭로했다. 오 사장은 같은 일을 당한 협력사 대표들과 함께 현대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위반과 협박 등의 혐의로 검찰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선비즈는 현대차와 베트남 현지 협력사 사이에 다수의 허위 거래와 선매출 압박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이 과정에서 오간 세금계산서와 선매출 영수증, 상업송장(인보이스) 등을 입수했다.

◆ 베트남 협력사 사장단 "최한영 부회장이 수출실적 부풀리기 주도"

현대차의 베트남 협력사 사장단은 최근 서울 모처에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사장단은 실적 부풀리기 주범으로 최한영 현대차 부회장(61·상용차부문 대표)을 지목했다. 이 회사들은 현대차의 물품 밀어내기 요구와 선매출 압박 탓에 협력 및 제휴 관계를 중단하고 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뗐다.

현지 판매업체 B사의 김모 사장은 "최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제시한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허위 세금계산서뿐 아니라 생산되지도 않은 차량에 대한 선입금, 주문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인수 등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A사의 오 사장 역시 "최 부회장은 현대차 상용사업본부장으로 있을 때부터 무리한 판매 목표량을 세우고 이를 채우기 위해 협력사들을 압박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대차에 무리한 물품 인수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과 함께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경우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는 내용증명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 부회장은 오 사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서울 남부지검은 2012년 10월 30일 오 사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현대차가 협력업체 사장 오 모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으나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해 10월 오 사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취재결과 현대차는 2011년부터 이런 사실을 내부감사를 통해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룹 감사팀과 재정부는 상용차 수출팀을 조사해 담당 임원과 부장을 다른 부서 전출시키거나 징계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은 징계의 화살을 피해갔다. 이에 협력사 대표가 현대차 감사실 임원을 만나 항의하자 '감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최 부회장에 대한 조치는 우리도 쉽게 할 수 없다.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감사 이후 현대차는 수출 실적을 기록하는 방식을 바꿨다. 세금계산서가 아니라 판매 대금이 입금돼야 실적으로 잡았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내부 관계자는 "(상용팀의) 문제가 불거졌고 감사실이 조사에 착수했다. 선매출에 대한 부분이 지적돼 징계 조처했고, 현지에 검증되지 않은 다수 업체와 무분별한 계약을 맺은 것도 확인됐다. 그룹 내에서 현재 상용차 수출팀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B사의 김 사장은 "시스템이 바뀌자 현대차는 차가 생산되지 않아도 신차 차대번호만 나오면 입금부터 하라고 종용했다. (내가) 자금이 없다고 하자 다음 달에 차 받고 싶으면 은행에 가서 빌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날짜는 모두 월말인 30일 또는 31일이다. 특히 한해 실적을 마무리하는 11, 12월에 집중적으로 계산서를 끊었다.
◆ 현대차, 매달 말일이면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

조선비즈는 현대차와 협력사 사이에 오간 110여건의 거래내역과 허위 세금계산서를 입수했다. 

거래내역서를 보면 현대차는 2008년 A사 한 곳에만 23건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이에 따르면 현대차는 2·3·6·7·10·11·12월에 총 230만달러(미화) 어치의 완성차를 수출한 것으로 돼 있다. 매달 말일과 한해 실적을 마무리하는 11, 12월에 집중적으로 계산서를 발행했다.
또 현대차는 2009년 협력사 B사를 상대로 허위 세금계산서 44건을 발행했다. 내역서에는 현대차가 그 해 8~12월 총 400만달러 어치 제품을 수출한 것으로 돼 있다. A사와 마찬가지로 계산서 발행일은 전부 30일 또는 31일이었다.

현대차 버스와 트럭을 공급받아 판매한 C사도 마찬가지다. 거래내역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2007년부터 2010년 초까지 300만 달러 이상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C사의 이모 대표는 "몇년 전만 해도 현대차는 베트남에 판매 인프라가 전혀 없었다. 중소 협력사가 힘을 모아 현지 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제품공급 중단과 협박 뿐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협력업체를 상대로 발행한 허위 거래와 세금계산서 발행 내역을 담은 서류.
법무법인 화우의 한 변호사는 "협력사 주장대로 허위 세금계산서가 발행됐다면 조세법, 특경가법 등 법률위반(허위세금계산서교부등)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현대차 홍보담당자는 "그 당시 수출팀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지금 없다. 회사 전산시스템 변경으로 거래 방식이 바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는 현대차 상용차수출팀 실무 담당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했지만 '출장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현대차가 협력업체를 상대로 발행한 다수의 세금계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