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료에게 벤처 육성책을 맡기지 마십시오. 기업과 벤처캐피털, 은행의 '3각 협업'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창조경제 모델이라는 것이 30년간 벤처기업 육성에 매달려온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30년 이상 벤처 금융을 전문으로 해온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의 켄 윌콕스(Wilcox·65) 회장이 창조경제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 준 첫 번째 충고는 '관료 경계령'이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정부 관료들은 고용 지표나 세수, 정책 집행 성과 등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고용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정치적 이유로 별 볼일 없는 기업에 지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켄 윌콕스(Wilcox) 실리콘밸리뱅크(SVB) 회장은 1일 본지와 인터뷰에서“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은행과 벤처캐피털이 성공 가능성 있는 벤처를 발굴해 성공시키는‘은행-벤처캐피털-벤처’의 3각 협업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인 벤처 육성책”이라고 말했다.

SVB는 총자산이 500억달러(약 55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벤처 전문 은행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벤처기업 절반 이상이 이 은행과 거래하고 있다.

윌콕스 회장은 기업과 벤처캐피털, 은행의 3각 협업 체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소와 실험실에서 탄생하는 수십만개의 신기술 아이디어 중 실제로 상업화될 수 있는 것을 골라내는 것이 벤처캐피털의 역할입니다. 정부도, 은행도 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벤처캐피털들이 발굴해낸 기업들이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은행이 뛰어들어 자금을 지원해 줍니다. 기업 입장에선 벤처캐피털에 추가로 지분을 줘가며 또 손을 벌릴 필요없이 은행에서 싼 자금을 빌려 쓸 수 있어 이득이고, 벤처캐피털은 (기업에) 추가 투자하는 위험성을 줄일 수 있어 이득이죠. 은행 역시 이미 한 번 옥석(玉石)을 가린 기업에 대출해 이자를 받을 수 있느니 돈을 떼일 리스크가 줄어듭니다. 그야말로 윈·윈(win·win) 모델이죠." 그는 "벤처가 벤처 투자자에만 의존하면 많은 투자자가 돈을 잃을 위험이 있고, 반대로 은행 대출에만 의존하면 부실 채권이 양산될 것"이라며 "내가 아는 한 은행-벤처캐피털-벤처의 3각 협업이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벤처 육성 모델"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과 벤처캐피털 간의 정보 교류와 신뢰에 바탕을 둔 협업이 핵심이다.

이렇게 투자를 해도 일반 상업은행의 손실(write-off)이 대출액의 1~1.5%인 데 반해 SVB의 평균 손실은 대출액의 7~8%에 달할 정도로 높다. 손실을 만회하려면 최소 연 11~12%가 넘는 고금리로 대출을 해줘야 하는데, 이래서는 벤처들이 남아날 수가 없다. 그런데 SVB는 이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면서 높은 손실률도 극복하고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윌콕스 회장은 "대출을 할 때 (대출받는 기업의) 주식 약간을 일종의 담보(warranty)로 받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그는 "벤처가 망하면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자산이 다른 벤처나 대기업에 매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받아놓은 약간의 주식들(small bits of equities)이 꽤 큰돈이 돼 손실을 만회해준다"고 했다. "이렇게 비결을 다 공개해도 되느냐"고 묻자 그는 "말은 쉽지만 행하는 것은 어려우니 괜찮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윌콕스 회장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리는 벤처 창업자들의 해외 진출 콘퍼런스인 '비론치(beLAUNCH)' 행사 참석차 왔다. 청와대 방문을 비롯, 창조경제와 관련된 국내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독일어 교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독일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일 유학을 다녀온 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독문학 교수까지 됐으나 어느 날 문득 "선생님 일이 지겹다"며 안정된 교직을 박차고 나와 하버드대 MBA의 문을 두드렸고, 졸업 후 은행업에 뛰어들어 30년간 벤처기업들만 상대했다. 그의 인생 자체가 '벤처(모험)'인 셈이다.

☞실리콘밸리은행(SVB)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설립된 벤처 전문 은행이다. IT(정보기술), 생명과학, 녹색·환경기술, 벤처캐피털, 와이너리 등 실리콘밸리 지역의 벤처·중소기업을 상대로 투자금융 영업을 하고 있다. 벤처캐피털과의 연계를 통해 이들이 1차적으로 걸러낸 기업들에 저리(低利)의 운영자금을 대출해주고, 주식을 담보물로 받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