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건축가]⑧ 양수인, "건물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다"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4.06 09:00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소재 소솔집 전경./신경섭 사진작가

    4일 오전 경남 남해 삼천포에서 다리를 건너 도착한 창선면 대벽리. 서울은 꽃샘추위가 매섭지만, 국토 남단의 섬마을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 너머론 바지락잡이 어선 예닐곱척이 소리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남해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된 ‘소솔집’ 앞에서 바라본 풍경은 수행자의 경행(經行)마냥 아늑했다.

    소솔집 내부 다락방 전경./허성준 기자

    소솔집은 ‘아름다운 식솔이 있는 집’이라는 뜻. 문화기획 전문가인 정소익(40)씨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다. 정 씨는 이탈리아 밀라노 유학 시절 석유 가격 폭등과 이어진 운송업 파업으로 신선한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했다. 농가 창고에선 먹을거리가 넘쳐나 썩을 정도였지만, 도시민은 주린 배를 움켜줘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유가 폭등이라는 거시 경제 이슈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웠지요. 따지고 보면 도시민의 삶은 각종 변수에 얼마나 취약한가요?”

    양수인 소장./조선일보DB

    정 씨는 이런 경험을 통해 마을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족 가능한 터전을 꾸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시도가 전력·급탕·환기에 소비되는 모든 에너지를 자체적 해결하는 ‘넷(NET) 제로에너지 하우스’. 대학 후배 양수인(38) 소장(삶것 건축설계사무소)과 함께 지난해 말 완공한 소솔집이 결과물이다.

    ◆ 에너지 자급에 도전하는 ‘소솔집’

    소솔집은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각종 신(新) 건축법이 동원된 친환경 주택이다. 남북으로 비껴진 두 채 건물은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동서로 길게 배치됐다. 연간 태양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평균 각도를 계산해 지붕 경사도를 결정했다.

    고깔모양 지붕에는 3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됐다. 이 집열 에너지는 231㎡(약 70평) 규모 주택의 전력·급탕·환기를 책임진다. 건물 전체는 여름 햇살을 잘 반사할 수 있는 흰색 방수재로 마무리됐다. 건물 외부에는 20cm 정도의 두꺼운 단열재를 부착했다. 외단열시스템은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줄인다.

    소솔집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설비와 집열판./신경섭 사진작가

    창문은 전면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 때문에 일반 주택보다 크게 설치됐다. 대신 창문과 벽 사이의 기밀도를 높여 열손실을 줄였다.

    양 소장은 “건축주가 집에 담고 싶어하는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친환경 주택이지만, 실리적인 설계를 통해 시공비도 일반 주택 시공비(3.3㎡당 400만~500만원) 수준으로 맞췄다”고 말했다.

    양 소장은 건축주의 평생 주택이 될 소솔집의 시공과정을 1~2일 간격으로 총 7개월 동안 사진과 동영상, 글로 남겼다. 건축주의 꿈과 시도, 과정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을 지었다고 하면 흔히 결과물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은 스스로 염원한 집을 짓는 과정, 그 속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 완성된 건축물에 대한 감탄과 탄성은 한순간이지만, 그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기록에서 기록으로 계속 이어지기 마련이다.”

    ◆ “이야기를 짓다, 건축물을 짓다”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양 소장은 디자인이 건축물 혹은 물체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답고, 기능적이라도 대상에 담긴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건축물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건축가가 건물만 짓는 시대는 지났다. 건축물을 둘러싼 다양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저변을 넓혀 나와 대중, 건축주가 긍정적이고 흥미로워할 이야깃 거리를 찾고자 한다.”

    양 소장은 건축설계사무소 홈페이지에 모든 작업과정을 공개하기로 유명하다.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일련의 과정이 이야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건축 과정이나 여러 생각들 자체가 나의 이야기다. 이를 공유하는 작업은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타인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담긴 모든 작업은 즐거운 법이니까.”

    현재 양 소장은 건물, 공공예술, 체험마케팅, 소품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공공예술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돼 청계광장과 서울역 광장에 시민자유발언대 ‘있잖아요’를 선보였다. 올해 초에는 서울시가 시민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 기획한 조형물 제작자로 선정돼 ‘여보세요’를 디자인했다.

    양수인 소장이 설계한 '있잖아요' 전경. 이는 청계광장에 설치된 시민자유발언대다./삶것 건축설계사무소 제공

    “시민자유발언대 ‘있잖아요’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다. 구글에서 청계광장을 검색하면 처음 뜨는 이미지는 2008년 광화문 일대에서 있었던 촛불집회 사진이다. 청계광장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또 다른 사진은 경찰버스가 청계광장을 둘러싸고 막은 사진이다. 완벽히 폐쇄된 광장의 모습이다. 이것을 보고 시민자유발언대를 기획했다. 광장에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서울역에도 소통과 관계된 공간 설치를 제안받았다. 서울역 광장은 80년대 현재의 청계광장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두 공간을 엮으면 80년대와 2000년대를 대변하는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양 소장은 소솔집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주요 활동 무대였던 뉴욕에서 인정받은 실력파다. 양 소장은 1981년에 제정된 뉴욕건축연맹 주관의 ‘젊은건축가상(Architectural League Prize for Young Architects)’를 2006년 수상했다. 이 전에 이 상을 받은 한국인 건축가는 조민석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 소장뿐이다.

    이날 인터뷰가 끝난 뒤 양 소장은 그의 컴퓨터의 한 폴더를 클릭하며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 폴더에 담긴 것들을 앞으로 의뢰받을 작업들에 이리저리 적용해볼 것이라고 했다. 소설가가 글감을 모아놓듯 양수인의 비밀 박스에는 이야깃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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