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원전 수출’이 일본 아베 정권의 ‘엔저’ 공세에 발목이 잡혔다. 일본과 맞붙은 터키 원전 수주전에서 참패한 것이다. 엔저로 인한 가격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원전 수출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출 하나로 끝날 가능성도 커졌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중국, 캐나다가 참가한 터키 원전 수주 경쟁에서 일본과 프랑스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4일 일본·프랑스 컨소시엄이 수주를 사실상 확정, 다음 달 일본·터키 정상회담에서 공식 발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타네르 이을드즈 터키 에너지자원부 장관도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일본 언론의 주장은 시기상조”라면서 “그러나 한국이 터키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정부 보증) 문제를 넘지 못해 탈락했다”고 밝혔다.
터키는 2023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흑해 연안에 총 4기(450만kW)의 원전을 건립할 계획이다. 사업비만 25조원에 이른다.
산업부 관계자는 “금융 비용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부한 터키 정부는 (한국이) 우선 투자하고 전기요금으로 사업비를 회수하라고 해 견해차가 있었다”며 “일본은 조달 금리가 우리보다 낮다”고 말했다.
정부가 결국 ‘무제한 양적 완화’를 내세운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통화 정책 탓에 수주 경쟁에서 밀렸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일본 아베 정권의 파격적인 엔저(低) 정책으로 제조업뿐 아니라 해외 원전 수출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원전수출이 커다란 암초에 부딪친 셈이다.
원전 수출이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이다. 정부는 그해 12월 UAE에 우리 기술로 탄생한 신형경수로(APR1400)를 수출, 세계 5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당시 정부는 “세계 원전 시장을 독점해 온 프랑스와 미국을 제치고 한국형 원전 4기를 UAE에 수출했다”고 강조했다. 수주 금액 200억달러는 쏘나타 100만대, 30만톤(t)급 초대형 유조선 180척 수출 효과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원전 건설 이후 운전과 기기교체 등 운영 지원에 참여해 200억달러의 추가 수출 효과도 기대된다고 자랑했다.
UAE 원전 수출을 시작으로 정부는 2030년까지 터키 등 세계 각국에 총 80기의 원전 수출을 목표로 차세대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정부는 터키 뿐 아니라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남아공, 핀란드, 리투아니아 등에 원전 수출을 타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6월 한·터키 정상회담에서 원전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터키에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며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실질적인 협력 파트너로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고 주장했다.
MOU 당시에는 한국의 수주가 확실했지만 이후 협상과정에서 터키 정부가 금융비용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부하며 난항을 겪다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터키 원전 수출 실패는 엔저가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본과의) 경쟁 품목인 자동차, 정보·통신(IT)뿐 아니라 원전, 바이오산업 등 신성장동력 사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