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간장값을 평균 9.9% 올린 샘표식품은 2010년 이후 세 번 가격을 인상했다. 3년치를 따져보면 매년 평균 10% 이상 가격을 올렸다. 지난 3년간 물가상승률이 2~4%대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상률이다. 이 과정에서 샘표식품 매출은 2010년 1960억원에서 지난해 16% 늘어난 2270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억5000만원에서 작년에는 그 50배인 124억원으로 폭증했다. 가격을 올리면 매출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시장경제 원칙이지만, 국내 간장 시장의 사정은 다르다. 샘표식품이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장을 안 먹는 사람은 없다. 샘표식품은 필수 기초식품 시장을 독과점하면서 가격을 올려, 이익을 챙기고 덩치를 키워 왔다. 기초식품 값 인상은 다른 식품이나 식당의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밀어올린다. 물가에 미치는 여파가 밀가루·설탕만큼 크다.

국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일부 식음료 업체들이 물가 인상률을 훨씬 웃도는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이익을 챙기며 덩치를 키워가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이 강한 이들 업체에 대해서는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독과점 식품업체, 폭발적 성장세

코카콜라음료는 지난해 8월 제품값을 5~9%씩 올렸고, 2011년에는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07년 4600억원에서 지난해 9100억원으로, 약 두 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4억원 적자에서 909억원 흑자로 변했다. 거의 매년 가격을 올렸는데도 이렇게 실적이 좋았던 이유 역시 독점기업이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국내 콜라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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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내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가공식품 업체들이 지난 5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기업이 발표하는 지난해 잠정 실적에 따르면, 매출이 1조원이 넘는 식품 기업은 15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에는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이 8개에 불과했던 것에서 배로 늘어난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1년 상위 20개 식품 기업의 총매출은 27조5000억원으로, 16조7000억원이었던 2007년보다 65%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5%가 늘었다. MB 정부가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할 때 식품업체들이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한 정부 압박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쏟아냈던 불만은 엄살이었던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나 농림수산식품부를 동원한 식품업체들의 담합 감시와 가격 인상 억제 노력이 별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 바탕 원인은 독점

매출 1조원이 넘는 업체들의 특징은 모두 독과점이라는 점이다. 식품 중에는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제품이 많아서 수요가 일정하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는 가격을 올리는 즉시 매출이 올라간다.

식품 기업 매출 1위인 CJ제일제당은 밀가루·설탕·고추장 등 기초식품 분야에서 과점 아니면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즉석밥인 햇반의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한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작년 영업이익이 재작년보다 45% 늘어났다고 공시했다.

식품기업 4위인 롯데칠성음료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영업이익이 두 배로 늘었다. 이 회사의 음료 시장점유율은 84%에 달한다. 동서식품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계속 가격을 올렸고, 같은 기간 매출은 29% 늘었다. 동서식품은 커피믹스 시장에서 80%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식품 정책 시각 바꿔야

업체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가격 인상 이유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인상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적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인상분보다 제품 가격을 훨씬 더 많이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은 연구비와 투자가 많이 필요하고 제품의 생존 주기도 짧아 리스크가 크다. 상대적으로 식품업은 제조업보다 리스크가 적다. 동국대 권승구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시장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독과점 식품업체가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면서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문제"라며 "정부가 식품 시장의 가격만 문제 삼지 말고 구조 전반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