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느 날.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60m급인 초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올라온다. 태풍의 진로를 놓고 기상청 연구관들은 격론을 벌인다. 그때 제주도 국가태풍센터에서 프로펠러 항공기 한 대가 날아오른다. 태풍의 눈을 향해 날아간 항공기는 태풍이 만들어낸 거대한 회오리 구름 속을 비행하며 태풍 데이터를 수집해 기상청에 보낸다. 기상청은 오차 없이 정확하게 태풍 진로를 예측한다.'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앞으로 2년 뒤 현실이 될 이야기다. '허리케인 헌터(Hurricane hunter·태풍 사냥꾼)'로 불리는 연구자들을 태우고 태풍을 근접 관측하는 항공기가 이르면 2015년 한국에 도입되기 때문이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운용하는 다목적 기상전용 항공기인 'WP-3D'가 대표적인 기종이다. 국가태풍센터 김지영 연구관은 "새로 도입될 다목적 기상전용기는 태풍과 집중호우 등 위험 기상을 근접 관측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형 회오리바람을 추적하는 영화 '트위스터' 속 용맹한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현실이 되는 것이다.
◇온난화로 수퍼 태풍 가능성 커져
정부가 태풍 관측용 항공기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인공위성과 지상장비만으로는 태풍의 위력과 진로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를 포함한 지구촌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국가태풍센터가 지난 40년간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들을 분석한 결과, 1971~2000년 태풍의 중심기압은 971.7hPa(헥토파스칼)에서 2001년 이후 10년간 967.5hPa로 낮아졌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위력이 커진다.
태풍의 평균 최대 풍속 역시 과거 초속 30.7m에서 최근 10년간 초속 32.7m로 강해졌다. 역대 바람이 가장 강했던 10대 태풍 중 1~6위까지가 모두 2000년대 이후 발생했다. 태풍에 따라오는 집중호우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기상 관측 사상 최대 호우 기록은 2002년 태풍 '루사'가 갖고 있다.
태풍은 자연재해 중 한국 경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한국은 자연재해로 매년 78명이 목숨을 잃고 한 해 1조7718억원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10년간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와 재산 피해 면에서 태풍이 1위, 호우가 2위였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이 경제적 피해 규모를 기준으로 선정한 10대 자연재해 중 9개도 태풍 혹은 집중호우였다. 태풍·호우가 아닌 재해 중에선 2004년의 폭설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같은 기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 중 81%는 태풍과 홍수에 의한 것이었다.
태풍의 위력이 갈수록 세지는 원인으로 많은 과학자는 지구온난화를 의심하고 있다. 더워지는 바다가 더 강한 태풍을 만들고 있다는 것. 현재의 온난화 추세가 유지된다면, 전 지구적으로 열대저기압이 강해진다. 2100년까지 태풍의 위력은 최대 11% 커지고, 태풍 반경 100㎞ 내 강수량도 20%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마디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수퍼 태풍'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경대 오재호 교수(환경대기과학) 연구진은 지구온난화가 지금처럼 지속된다고 가정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 결과 2100년에는 초속 70m급의 초강력 태풍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2003년 대한해협을 통과하면서 부산을 초토화했던 '매미'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다. 태풍 매미 당시 부산 신 감만부두 대형 크레인 6개가 엿가락처럼 부러지고 해운대 해상호텔이 전복됐다.
◇레이더로 게릴라성 집중호우 추적
오재호 교수는 "수퍼 태풍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서둘러 조기경보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경보의 핵심은 바람보다는 태풍이 동반하는 집중호우와 홍수다. 도시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홍수는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전형적인 예가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청계천이 15분간 게릴라성 호우로 급격히 물이 불면서 산책 중이던 시민 6명이 고립됐던 사건이다. 서울시에는 70여개 강우 관측소가 있지만, 당시 이 같은 홍수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동률 박사 연구진은 현 관측 기술을 대체할 레이더 호우 관측법을 개발하고 있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레이더에서 지상 1㎞ 상공의 빗방울들을 향해 전자파를 발사한다. 빗방울에 맞은 전자파는 반사돼 레이더로 되돌아온다. 비가 많이 오면 레이더가 수신하는 전파가 강해지고, 비가 적게 오면 그 강도가 약해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레이더의 강점은 가로세로 100m 넓이 단위로 정확한 강우량 관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레이더 3대면 서울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박사는 "서울 전역에 6만개의 강우 관측소를 깔아놓은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동네별로 1분 단위로 강우량 예보가 가능해지고 돌발 홍수 발생 30분 전에 경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방재연구원은 발생 초기의 태풍 데이터를 입력하면 예전 태풍 중 유사한 모델을 찾아 피해 규모와 양상을 예측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연구원 이치헌 박사는 "지난 30년간 한반도와 그 주변을 지나간 모든 태풍의 데이터를 분석했다"라며 "이를 통해 재난에 대비한 인력과 장비를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리케인 헌터(Hurricane hunter)
'태풍 사냥꾼'이라는 뜻으로, 기상 관측용 항공기로 태풍의 눈을 관통 비행하며 특성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미국 해양대기청에서 주로 일하며, 대부분이 미 공군 예비역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