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최근 임기 3년의 신임 연합회장으로 강호갑(58) 신영그룹 회장을 내정했다. 다음 달 연합회 총회에서 정식으로 추대돼 중견기업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는다.

중견기업이란 중소기업을 졸업하고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직전인 기업을 말한다. 강 회장은 부도 직전 자동차 부품 회사를 인수해 8년 만에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기업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경제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커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신정부 중견기업 육성 정책의 중심에 서서 그가 할 일이 주목받고 있다.

"중소기업 졸업하면 대출도 안 돼"

신영그룹은 우리나라에 많지 않은 중견 제조기업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계열도 아닌 회사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군으로 성장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강 회장은 "조금 크려고 하는 중견기업은 대기업의 견제를 받고, 대기업과 똑같은 규제 폭탄을 맞는다"며 "지금까지 독립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며 '죽을 둥 살 둥' 회사를 키워왔다"고 말했다.

신영은 자동차 차체·금형 전문 업체다. 이 중 금형부문은 국내 1위다. BMW·GM·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에도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8800억원에 달했다.

강 회장은 가업(家業)이었던 조선(造船) 부품회사를 하다가 1999년 외환위기로 부도위기에 몰린 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인수했다. 향후 자동차 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투자한 것이다. 기업 경영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8년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강호갑 신영그룹 회장은 “중소기업을 졸업하지 않으려는 풍토 속에서 독립운동하듯 기업을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에 취임한다.

"300억원이 넘는 신형 프레스 공장라인을 지을 때입니다. 그런데 은행 측이 갑자기 '신영은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니라서 대출이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하늘이 노래졌죠."

중소기업을 졸업한 줄 모르고 경영에만 신경 쓰다가 큰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중소기업은 종업원 300명 미만이거나 자본금 80억원 이하인 기업을 말한다. 그는 백방으로 뛰어 4개월 만에 가까스로 설비 자금을 마련했다.

사재 털어 중견기업 연구 지원

강 회장은 2010년 수억원의 사재(私財)를 털어 경영학자들을 모아 중견기업학회를 조직했다. 한국 사회에 문제의식을 던지려고 한 것이다. "1980년대까지 한국 경제는 대기업을 지원하며 수출을 독려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견기업을 탈피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많았어요. 그 이후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회사는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중견기업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프랑스는 독일처럼 강력한 중견기업을 키우는 산업정책을 수립했다. 미국도 미들(middle·중간)급 기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중견기업 육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양질의 고용 효과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견기업은 2008~2010년 사이에 매년 4만3000개씩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대기업 일자리는 같은 기간 2만7000개 느는 데 그쳤다.

'중견기업'이란 용어는 2년 전 제정된 산업발전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뿌리산업진흥법·소프트웨어진흥법 등 18개 법령에는 대기업·중소기업으로만 구분돼 있고, 중견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2011년 중견기업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이 111개사나 된다. 이게 바로 '피터팬 신드롬' '난쟁이 신드롬'이다.

"독일에는 세계 시장 정상을 다투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급 중견기업이 1600개나 있지 않습니까. 새 정부 경제정책의 초점은 그런 세계 일류 중견기업 300여개를 만드는 것으로 모여야 합니다."

☞중견기업(中堅企業)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났으나 대기업에 속하지 않는 기업. 현재 1422개로 전체 기업 중 0.04%를 차지한다. 중소기업은 종업원 300인 미만이거나 자본금 80억원 이하인 기업. 대기업은 자산 총액 5조원이 넘는 상호출자제한집단이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각 분야의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우량기업.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의 저서에서 유래했으며 강소기업(强小企業·작지만 강한 기업)이라는 말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