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정책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4조원 중 3분의 2 이상을 세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키로 하면서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박 당선인의 공약이 주로 반영된 복지 지출 외에 재량 지출 위주로 세출을 줄여나간다는 방침으로 '마른수건 쥐어짜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달 말까지 재원 확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남은 시일은 약 보름. 정부 관계자들은 집권 초 ‘감세’에 온통 초점이 맞춰졌던 현 정부와 달리 새 정부에서는 경제 활력, 복지, 무(無) 증세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세출ㆍ세입 조정이 수월치 않다고 토로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선 추계를 해서 규모가 나와야 세출 구조조정 수준을 정할 수 있다"며 "지금은 가타부타 말할 수 없고 어쨌든 이달 중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약재원 3분의 2, 세출 절감해 만들어 내야
진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3일 "재정부가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306개 사업 중 재정이 필요한 225개 공약에 대한 재원 추계를 실시하고 재원 확보대책을 이달 중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재원조달 계획'에서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5년간 134조5000억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 중 3분의 2인 81조5000억원을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약이 주로 반영된 복지 지출과 무조건 지출 소요가 발생하는 의무 지출을 뺀 재량 지출을 축소하자는 게 세출 구조조정의 골자다.
재정부는 지난해 기준 53% 재량지출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면 매년 4조원 이상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규모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을 중심으로 세출 구조조정에 나설 전망이다. 유사 사업과 중복 사업을 통폐합하고 예비 타당성 조사도 강화할 계획이다.
◆ 年 16조원 세출 절감 ‘글쎄’
그러나 박 당선인이 공약에서 밝힌 대로 당장 내년부터 연 16조원 수준의 세출을 줄이기엔 역부족이다. 재정부는 재정사업 평가 대상을 대폭 늘리고 성과가 저조한 사업은 예산을 삭감하거나 폐지하기로 했지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세출 감소분은 몇천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재정부는 이달부터 오는 5월까지 실시하는 '2012년 회계연도 재정사업 자율평가'에서 지난해(474개)보다 28.3%(134개) 늘어난 608개 사업에 대해 평가하기로 했지만 이를 통해 삭감되는 지출 규모는 전반적인 세출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이 평가는 직전 회계연도 사업에 대한 평가를 이듬해 예산에 반영하는데, 앞서 2011년의 평가의 경우 2013년 지출을 3500억원 줄이는 데 그쳤다. 이는 사업 평가 대상이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집행 경비나 인건비 등은 평가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평가에서 평가 사업 수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고 최근 세출 절감 분위기를 고려하면 예년과 비교하면 감액 규모가 커질 가능성은 있다. 재정부는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오는 2월24일까지 각 부처로부터 사업 평가 보고서를 받을 예정이다. 이는 여느 때보다 2주가량 앞당긴 것이다.
◆ 비과세ㆍ감면 축소한다지만
세출 감소 외에 세입 증가(53조원)를 통한 재원 마련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당선인이 '증세는 없다'고 못박은 가운데 세입은 대개 비과세 감면 축소(15조원)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경제 활력과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각종 감면안도 공약한 상황이어서 재정부가 숫자를 맞추기가 수월치 않다.
일단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취득세 감면 연장을 도입하면 연간 2조9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또 중견기업 세제 지원, EITC 확대, 버스업계 유류세 감면 등을 합치면 6000억원 가까운 세수가 결손이 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관계자는 "현 출범 때에는 국정 과제의 중심에 '감세'라는 큰 줄기가 있어서 세입이나 세출을 조율할 때 수월한 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엔 복지 등 고정 지출이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증세는 하지 않되 세원을 추가 발굴하고 대규모로 세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