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이후 밥상 물가가 일제히 올라갈 전망이다. 식음료 업계가 밀가루·포장김치·소주·설탕 등 주요 품목에 대해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 안정 차원에서 대선 전까지는 인상을 억제했지만, 원자재 시세가 너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올해 식료품비는 이미 작년보다 크게 올랐다. 1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평균 1.6% 오른 반면 농축수산물 등 식품 물가는 2.9% 상승했다. 여기서 추가로 가격이 인상되면 가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원자재값 상승이 식품 가격 올려

연말 가격 인상이 확실시되는 품목은 밀가루다. 주요 밀 생산국인 미국은 올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흉작을 거뒀다. 밀 자급률이 0%에 가까운 우리나라는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CJ제일제당은 올 6월 미국 가뭄이 시작된 이후 생산된 곡물을 수입하고 있어 가격 압박이 크다. 동아원도 6월 이전 비축분을 모두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분업계는 9%가량 가격 인상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 박사는 "주요 밀 생산국인 아르헨티나도 비가 많이 와서 파종이 늦어질 수 있다"며 "내년 초에도 밀 생산이 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탕값도 오름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브라질이 내년에 사탕수수를 주 재료로 하는 에탄올 연료 사용을 늘려 국제 설탕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설탕협회(ISO)는 내년 설탕 생산량의 절반 정도가 에탄올 연료로 쓰일 것으로 추정했다.

밀과 설탕 값이 오르면 이를 주 재료로 하는 과자·라면 등 가공식품도 줄줄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식품업계 1위인 CJ는 "올해 안에 두부·콩나물·조미료 가격을 10%가량 올리겠다"고 밝혔다. 대상FNF 등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쌀·고기도 가격 상승 불가피

채소 값도 줄줄이 올랐다. 여름철 태풍과 이른 한파 영향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19일 배추 한 포기가 3416원으로 지난해보다 181% 올랐다고 밝혔다. 무 한 개 가격도 2169원으로, 1년 전보다 83% 비싸다. 중국산 냉장 마늘과 건조고추는 11월 수입 가격이 전달보다 각각 170.5%, 152.6% 급등했다. 이 때문에 지난 2년간 가격이 동결됐던 포장김치 값도 오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쇠고기·돼지고기 값도 곧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축산농가가 깔짚으로 사용하는 왕겨가 작년보다 30~40% 가격이 뛰었다. 볏짚도 한 롤(roll)당 5만5000원 하던 것이 현재는 7만원 선이다. 미국육류수출협회는 "사료값이 폭등해 내년엔 미국산 쇠고기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축산농가가 사료값 폭등 때문에 소를 일찍 도축하는 바람에 우유·치즈 등 유제품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수산물 가격도 위태롭다. 최근 한·러 어업 분쟁으로 러시아 해역에서 명태·게를 잡기 어려워져 어획 물량이 대폭 줄었다. 명태잡이 배가 많은 부산에서부터 명태 가격이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식인 쌀조차 안전하지 않다. 올해 쌀 생산량은 작년보다 5.2% 줄어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소주 가격도 인상 움직임이 있다. 소주 원료인 주정(酒精) 가격은 2008년보다 5.6% 올랐다. 일반 소매점에 납품하는 도매상의 물품 인수증엔 '소주 가격이 조만간 인상될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다.

밥상 물가가 오르면서 올해 가계 전체 소비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2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올 3분기 가계 식음료 지출액이 총 24조1946억원으로, 전체 지출액의 14.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불황 탓에 씀씀이가 줄고 소비구조가 식비 위주의 후진국형으로 바뀐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