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구조적 문제점들이 부분적으로 해소되면서 내년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선진국의 부채 축소(디레버리징)로 인해 회복 정도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은 16일 '2013년 세계경제 전망'에서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3.4%로 올해(3.2%)에 비해 다소 높아지겠으나 2000년대 중반의 5%대 고성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세계경제 회복세 제한될 듯‥선진국 부채 축소 악영향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세계경제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미국의 주택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주택재고 조정이 일단락되면서 그동안 크게 위축됐던 건설투자가 회복되고 주택관련 내구재 수요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계부채도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97.2% 규모에서 올해 2분기 83.1%로 줄었다. 이에 따라 가계 소비여력이 회복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주택경기가 반등하고 물가도 안정되는 등 수요확대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내년에 미국과 중국이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면서 세계경제의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전망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부채축소 흐름(디레버리징), 유로존 불확실성 등은 세계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혔다. 선진국 정부의 재정건전화를 위한 적자 축소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2008년말 GDP대비 82.3%에서 올해 10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예산관리법이 내년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되면서 내년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 규모는 1500억~3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유럽에서는 남유럽 위기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재정적자 감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위원회(EC)는 최근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적자 규모가 올해 GDP 대비 3.3%에서 내년 2.6%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의 경우도 지진복구 수요 감소 등으로 GDP 대비 정부지출 규모가 내년에 0.6%포인트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선진국 정부의 내년 재정적자 축소 규모가 약 4500억달러로 총 GDP의 1%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선진국들이 세계경제 규모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공공부문 수요감소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약 0.5%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 유럽 재정위기 불확실성 여전
유로존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급박한 유동성 위기 가능성은 줄었지만 위기국의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재정건전화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이에 따라 신뢰위기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유동성 지원책을 넘어서는 구조적 개선책 마련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재정통합이나 유로본드 발행, 은행동맹 등 개선책은 국가간 상황차이에 따라 합의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구제금융 재개로 유동성 문제가 다소 해소되면서 시간을 벌었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할 여건을 갖추기 전까지는 불안한 상황이 수시로 재개될 수 있다고 전망됐다. 스페인은 내년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예정된 것이어서 추가 충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실물경기와 부동산 시장의 동반침체 우려가 남아있다. 소득악화와 담보가치 하락으로 은행 부실화가 가속될 경우 경기침체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구제금융 실사 때마다 자금지원을 놓고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는 우려에 비해 제반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3분기 성장률이 -0.2%로 2분기 -0.7%에 비해 개선됐고 재정적자도 GDP의 2.9%로 축소됐다. 내년에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총선이 예정돼 있어 선거과정에서 각국의 정치적 마찰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됐다.
◆ 유로존 침체 지속, 일본 성장세 크게 둔화
내년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성장활력이 낮아지면서 국가간 실력차도 뚜렷해질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의 부진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은 재정적자 축소로 정부부문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민간소비와 투자 위축도 이어질 전망이다. 대출 연체율 상승 및 담보가치 하락 등으로 유럽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가계,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되고 소비 및 투자여력도 제한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은 정부의 복구 지원금 및 자동차 구입 보조금 등 대대적 부양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의 수요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높은 국가부채 비중으로 재정적자 축소 부담을 안고 있는 일본 정부가 추가 부양에 나설 여력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엔화가 소폭 약세로 돌아설 전망이지만 전기전자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 저하 세가 수출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올해 급격한 성장률 저하를 겪었던 브릭스 국가들은 내년에는 성장세가 다소 높아질 전망이다.
◆ 원자재 가격 안정, 유로 엔 약세 보일 듯
내년에 석유, 비철금속, 곡물 등 대부분 원자재의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됐다. 석유시장에서는 선진국의 수요감소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등 개발도상국도 수요 증가가 제한될 전망이다. 세계 석유 수요는 1% 미만 증가에 그치는 반면 공급 능력은 내년에 2.3%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비철금속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구리 공급이 증가하고 남미와 중동지역의 생산능력 확대로 니켈과 알루미늄 공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곡물도 기상여건 개선으로 당초 예상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또 내년에는 세계적인 통화 완화,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에 따라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국 뿐 아니라 물가우려로 금리인하에 소극적이었던 신흥국도 통화완화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판단이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에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달러화 이외에 호주 및 뉴질랜드 달러, 한국 원, 싱가폴 달러, 노르웨이 크로네 등이 대체 안전자산으로 부각될 수 있다. 올해 달러화 대비 약 8% 절하됐던 유로화 가치는 내년에도 반등하지 못하고 유로당 1.27달러 내외의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엔화도 통화완화 정책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여 약세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엔화는 내년에 달러화 대비 85엔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위안화는 올해 평균 달러당 6.31위안에서 내년에는 6.19위안으로 소폭 절상될 것으로 예상됐다.
연구원은 또 각국의 추가 통화완화정책으로 세계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캐리트레이드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금융시장 불안이 완화될 경우 금리가 낮은 선진국 통화를 조달해 신흥국에 투자하는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