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들이 '세계 무역 8강' 한국을 이끌었다. 4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11월까지 휘발유·경유·등유 등 석유제품 수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9.8% 늘어난 517억2000만달러를 기록, 전체 수출에서 10.3%를 차지했다.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 비중 8.4%까지 합치면 전체 수출액의 18.7%가 정유·석유화학 산업에서 이뤄진 것이다.

유럽 지역의 재정 위기 등 경기 침체로 올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력 수출품이었던 선박은 지난해에 비해 수출액이 30% 가까이 떨어졌고, 무선통신기기(-18.6%), 철강(-1%) 등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석유제품이 선전하지 않았다면 '무역 1조달러 클럽' 2년 연속 달성은 불가능했다. 올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반도체 9.2%, 자동차 8.4%, 선박 7.4%, 휴대폰 4.1%로 모두 석유제품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전체 수출 규모는 사상 최대 수출기록을 세웠던 지난해(5552억달러)와 비슷한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지난해에 이어 1조달러를 돌파, 이탈리아를 제치고 '무역 8강국'이 될 전망이다. 무역 8강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은 정유업이 일궈낸 것이다.

종합상사를 제외한 제조업체가 250억달러 수출을 돌파한 기업도 삼성전자 이후 정유업계에서 최초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가 올해 수출이 250억달러를 넘어섰고, SK에너지에쓰오일도 각각 200억달러 수출을 돌파했다. 업계 4위인 현대오일뱅크도 올해 80억달러 수출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 3사가 모두 200억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운 건 놀랄 만한 일이다. 해외 생산이 많은 현대자동차의 올해 수출액이 200억달러를 돌파한 것과 비교하면 정유업체들의 높은 수출 기여도를 짐작할 수 있다. 250억달러 수출을 하려면 중형 승용차인 쏘나타를 125만대 팔아야 하고, 초대형 유조선을 225척 수출해야 하는 엄청난 액수다.

정유업계에서는 원유가 전혀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정유업을 수출 산업으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의 전환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석유협회의 한 간부는 "1982년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임가공 수출을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내수에 충당하고 남은 것을 수출하는 형태였다"며 "이후 이런 소극적인 수출 형태에 머물지 말고 과감한 투자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고, 이것이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정유업계에서는 중국 등 신흥시장의 수요 증가에 대비해 저질유를 고급 석유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고도화시설에 선제적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같은 양의 원유로 더 많은 고급유를 뽑아낼 수 있게 되면서 석유제품의 품질과 가격 양면에서 경쟁력을 갖게 됐다.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정유사업 자체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방향족(BTX) 같은 석유화학 제품과 윤활유를 만드는 데 쓰이는 윤활기유(Base Oil)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경쟁력을 더욱 강화했다.

GS칼텍스 이병무 상무는 "수출선도 다변화해 중국, 동남아는 물론 UAE, 인도네시아 등 산유국,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칠레, EU 등 5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며 "GS칼텍스는 올해 306억달러의 원유를 수입했지만 254억달러의 석유제품을 수출해 수입액의 83%를 수출로 회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