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국GM의 인천 부평공장 에너지 관리자로 일하기 시작한 김진석 에너지유틸리티팀 차장은 부임 후 첫 달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부평 공장 규모의 생산 시설이라면 월 4000만원은 족히 나와야 할 전기요금이 겨우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전 납부 내역을 확인해 봤더니 연간 5억원 이상 나와야 할 전기요금이 실제로는 2억2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전기요금을 줄인 비밀은 공장에 새로 설치한 '인버터'에 있었다.
◇인버터 설치 공장, 전기요금 절반으로
최근 원자력 발전소가 잇달아 가동을 멈추고, 겨울철 전력난까지 우려되면서 인버터가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버터를 도입한 기업들은 전기요금은 물론 탄소배출량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인버터 원리는 간단하다. 공장에서 제품 운반과 생산에 사용되는 모터는 항상 같은 속도로 돈다. 생산량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같은 속도를 내기 때문에 같은 양의 전기가 들어간다. 인버터는 생산량이 많을 때는 모터를 빨리 돌게 하고, 적을 때는 천천히 돌게 해 효율적으로 전기를 쓸 수 있게 한다. 센 바람만 일으키는 선풍기보다 필요에 따라 바람 세기를 조절하는 선풍기가 전기 사용량이 적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인버터는 대형 공장뿐 아니라 백화점과 할인마트 등 쇼핑시설의 냉난방 설비에도 적용된다. 온도에 따라 공조기의 날개가 도는 속도를 조절해 전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2007년 서울 영등포점에 인버터 8대를 시범 설치해 35~40%의 에너지를 줄였다. 효과를 톡톡히 본 이 회사는 2008년 4월 인버터를 설치한 지점을 10곳으로 늘렸다. 덕분에 전기요금을 40%나 절감했다.
롯데마트는 그해 10월 전국 지점으로 설치를 확대, 총 627대의 인버터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연평균 전기요금을 5억7000여만원 줄였다. 연간 전기 사용량도 570만kWh(킬로와트시)나 줄였다. 이는 1만9000가구가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397만TOE(석유환산톤·석유 1t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양)분을 줄였다. 이는 매년 소나무 86만 그루를 새로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2~3년이면 초기 투자비 회수 가능
LED(발광다이오드) 조명과 태양광 발전 시설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다. 인버터는 투자비 회수가 이보다 빠른 편이다. 롯데마트는 정부 지원 7억원을 더해 총 22억원을 인버터 설치에 투자했다. 줄어든 전기료를 계산했더니 롯데마트는 투자비를 약 3년 만에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는 쇼핑 카트를 태우고 각층을 오르내리는 '무빙워크'에도 인버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버터의 에너지 절감 효과는 크지만 국내 보급률은 5%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국내 공장과 건물에서 전기모터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전체 국가 전력사용량의 40%에 이른다. 이들 모터에 모두 인버터가 부착된다면 에너지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인버터 제조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LS산전은 롯데마트에 설치된 인버터를 전량 공급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 들어선 국제금융센터(IFC)에도 422대의 인버터를 설치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만 20만대의 인버터를 판매했다. 이들 인버터가 아낀 전력만 2억4000만kWh에 이른다. 80만가구가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현대중공업과 서호전기도 보급 확대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주로 컨베이어 등 공장 자동화 설비에 사용되는 대용량 산업용 인버터를 시장에 내놨다. 서호전기는 공장 크레인과 산업 설비에 사용되는 인버터 시스템을 개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가전업체들은 세탁기에 빨래를 할 때는 저속으로, 탈수할 때는 고속으로 모터를 회전시키는 인버터 기술을 적용했다. LS산전 관계자는 "인버터는 회전 속도 제어를 통해 모터를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어 설비 수명이 길어진다"며 "유지와 보수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버터(inverter)
상황에 따라 모터의 전압과 주파수를 조절해 회전 속도를 바꾸는 변환장치다. 공장 등에서 작업량이 많을 때는 모터를 빠르게, 적을 때는 느리게 돌아가게 해 전기 소비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