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을(乙)의 인생을 산다지만, 친조카 결혼식도 못 가고 거래 대기업 임원 딸 결혼식에 얼굴도장 찍으려고 서울까지 올라올 때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
경남의 한 부품 제조업체 사장은 2년 전 이렇게 참석한 10대 그룹의 계열사 임원 결혼식에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냈다. 그는 "구매 등 중요 부서의 임원이나 사장 결혼식에 1장(1000만원), 2장(2000만원)씩 내는 것은 업계의 기본"이라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기본 100만원은 내는데, 한 번도 축의금을 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골프 접대다, 룸살롱 술접대다 이런저런 접대가 많지만, '결혼식'을 압권으로 꼽고 있다. 한 중소 건설업체 사장은 "축의금이나 화환을 그쪽에서 먼저 요구하지 않지만, 청첩장을 보내면 다 그런 뜻 아니겠느냐"며 "그 정도 눈치 없이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결혼식이 몰릴 때는 1년에 축의금으로만 2억원을 쓴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회계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회사 돈이었다.
재계 5위의 포스코가 이런 잘못된 결혼 먹이사슬 관행을 끊겠다고 나서자, 중소기업계에서는 크게 환영하고 있다. 포스코는 그동안 명절 선물 반송 센터를 만들고, 중소 협력업체와 성과 공유제를 시행하는 등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에 앞장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부터 선물 반송 센터를 운영한 포스코는 지난 추석에도 이해관계자로부터 받은 물품 92건을 접수해 처리했다. 집으로 배달된 물품은 반송 처리하고, 발송자가 누군지 모르는 물품은 사내 경매 등을 통해 복지시설을 도왔다.
2004년에는 대기업 최초로 성과 공유제를 도입해 작년까지 801개 중소기업에 826억원을 성과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성과 공유제는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비용 절감, 수익 증대 등 성과를 이뤄냈을 때 협력업체와 나누는 것으로 대표적인 동반 성장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이런 포스코가 이번에는 잘못된 결혼 문화 근절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포스코는 본사와 전 계열사 임원이 이해관계자에게는 축의금을 받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불가피할 경우 5만원 이내를 받도록 권장하기로 했다. 10만원이 넘으면 돌려주거나 회사 윤리실천사무국에 기탁하도록 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대기업 결혼식의 축의금 등은 중소기업계에서 큰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며 "포스코가 앞장선 바람직한 결혼 문화 확립에 다른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계에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력 2012.11.0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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